나카야마 미호, 러브레터 주인공은 아이돌이었다


나카야마 미호, 러브레터 주인공은 아이돌이었다


일본 영화 명대사 하면 쉽게 떠오르는 장면은 1995년 영화 <러브레터>에서 여자 주인공이 외쳤던 "오겡끼데스까(おけんきですか?, 잘 지내시나요?)"입니다. 그 대사 때문에 한국에서 러브레터가 많은 화제를 모았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잊히지 않습니다. 러브레터는 한국에서 1999년에 개봉되었는데 그때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었던 때였습니다. 러브레터를 통해서 일본 영화를 포함한 일본 대중문화에 흠뻑 빠졌던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면서 러브레터 여자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中山美穂)의 이름이 한국에서 많이 알려졌습니다. 알고 보면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입니다.




[사진 : 나카야마 미호, 사진 출처 : 나카야마 미호 오피셜 팬 클럽 사이트(nakayama-miho.net)]



나카야마 미호는 일본의 배우 겸 가수입니다. 배우로서 한국인들에게 러브레터 오겡끼데스까로서 인지도를 높였다면 가수로서는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세상의 그 누구보다 분명)이라는 히트곡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는 일본 남성 밴드 WANDS와 콜라보 호흡 맞췄던 나카야마 미호의 싱글 25집으로서 1992년 10월 28일 발매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앨범 판매량 183만 장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으며 그 당시 일본 여성 가수의 싱글 곡 역대 1위의 매출을 자랑했습니다. 이 노래를 들어보면 '이거 한국 노래 아니었어?'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쉬울 겁니다. 포지션 <그 해 겨울은>(2000년 발매) 더 넛츠 <사랑의 바보>(2004년 발매)의 원곡이 바로 나카야마 미호 & WANDS의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였습니다.


한국에서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는 WANDS 노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원곡이 여러 형태의 버전으로 파생된 영향 때문일지 모릅니다. WANDS 앨범에서도 따로 수록되었던 전례가 있었죠.(1993년 오리지널 앨범 '時の扉'에 수록) 하지만 일본에서 크게 히트했던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는 나카야마 미호가 노래, WANDS가 코러스 및 연주를 맡았습니다. 라이브 공연에서는 나카야마 미호가 무대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WANDS 멤버들이 그 뒤에서 각자의 역할에 집중했습니다. 실제 앨범에서는 1992년 나카야마 미호 싱글 25집으로 발매되면서 183만 장의 판매량을 올렸습니다. 심지어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는 1992년 나카야마 미호가 NHK 홍백가합전에서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그때도 WANDS와 함께 협연했습니다.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는 나카야마 미호가 2015년 후지TV에서 방영되었던 FNS 가요제에서 불렀던 노래 중에 하나였습니다.(다른 한 곡은 1994년 노래였던 ただ泣きたくなるの -그냥 울고 싶어져요-) 당시 FNS 가요제에서는 나카야마 미호의 데뷔 30주년 기념 라이브 공연이 성사됐습니다. 그녀가 18년 만에 정식적으로 TV 프로그램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죠. 다르게 표현하면 21세기 이후 최초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오랫동안 배우 활동에 집중했던 나카야마 미호가 가수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론의 신선한 자극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진 : 후지TV에서 진행했던 2015년 FNS 가요제 출연자 명단에 포함되었던 나카야마 미호. 사진 출처 : 후지TV FNS 가요제 공식 홈페이지(fujitv.co.jp/FNS/2015/index.html)]



나카야마 미호 가수 활동하면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을 떠올리기 쉬우나 실제로는 아이돌 가수로서 엄청난 활약상을 과시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 각광받았던 여성 아이돌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NHK 홍백가합전 출장 7회(1988~1994년) 및 FNS 가요제 1998년 그랑프리 수상(Witches라는 노래로 수상),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 2회, 1993년 제6회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 여성 아이돌 부문상 등에 이르기까지 여성 아이돌 솔로 가수로서 눈부신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영화계 활약 또한 대단했습니다. 1995년 영화 <러브레터>를 계기로 블루리본상을 포함한 4개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달성했으며 1997년 상영되었던 <도쿄 맑음>에서는 이듬해였던 1998년 제21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가수와 배우로서 승승장구했던 나카야마 미호의 전성기 시절 활약상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 깊은 추억으로 회자되는 중입니다. 특히 나카야마 미호가 2015년 FNS 가요제에서 노래를 불렀던 모습은 과거 그녀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기분 좋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향후 그녀가 가수 활동을 다시 시작할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전설적인 여성 아이돌 가수로 활동했던 클래스는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노기자카46, 공식적인 AKB48 라이벌 걸그룹! 두 일본 아이돌간의 격돌이 기대된다.

노기자카46, 공식적인 AKB48 라이벌 걸그룹


노기자카46(乃木坂46)의 2015년 NHK 홍백가합전 첫 참가는 일본 정상급 걸그룹 반열에 완전히 올라섰음을 의미합니다. 2015년을 화려하게 빛냈던 그녀들의 굳건한 인기를 놓고 보면 NHK 홍백가합전 등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노기자카46의 NHK 홍백가합전 첫 출장 타이밍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싱글 앨범 판매량 12번 연속 1위(2th~13th) 및 활발한 공연 활동을 놓고 보면 2015년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 등장한 것이 의외입니다. 이미 그녀들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일본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했으니까요.




노기자카46 공식 트위터 프로필의 첫 문장은 이렇게 소개됐습니다. "AKB48 공식 경쟁자로 결성한 아이돌 그룹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을 AKB48 라이벌 걸그룹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녀들이 결성했던 2011년에는 AKB48이 일본 최고의 걸그룹으로서 맹위를 떨쳤던 때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똑같지만요. 그만큼 AKB48 영향력이 일본에서 매우 막강합니다. 어떻게 보면 노기자카46이 연이은 고공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AKB48 존재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AKB48과 경쟁하는 걸그룹이면서도 실제로는 AKB48을 통해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면서 대중적인 관심과 성원을 받았으니까요.



흥미로운 것은 노기자카46과 AKB48을 결성시켰던 사람이 동일인물입니다.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에 의해 만들어졌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기자카46이 AKB48 공식 라이벌이 될 수 있었으며 이코마 리나와 마츠이 레나간의 교환 유학이 가능했습니다. 노기자카46의 이코마 리나는 2014년 4월부터 2015년 5월까지 AKB48 팀B 멤버를 겸임했으며 마츠이 레나(2015년 SKE48 졸업)는 AKB48 자매그룹인 SKE48 팀E 멤버였음에도 노기자카46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특히 이코마 리나는 2014년 AKB48 제6회 총선거(AKB48 37th 싱글 선발 총선거)에서 14위를 기록하며 당당히 선발 멤버에 진입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참고로 당시 총선거에서는 마츠이 레나가 5위에 올랐습니다.




노기자카46이 싱글 선발 멤버를 가리는 방식 또한 AKB48 총선거와 유사성이 짙습니다. 대략 200~300명 정도로 추정되는 AKB48 그룹 멤버들이 참여하는 총선거에 비하면 현재 멤버 규모가 크지 않으나 싱글 선발 멤버 변동이 잦습니다. 노기자카46 현재 멤버는 37명입니다. 그중에 싱글 선발에 포함되는 멤버는 16~17명입니다. 매 번 싱글이 발표될 때마다 싱글 선발 멤버 16~17명, 복신 멤버 및 센터 포지션을 맡을 인물을 가립니다. 얼마 전 진행된 14th 싱글 선발 멤버는 17명이 선정되었으며 13th 싱글에 비해 1명이 더 늘었습니다. 


노기자카46 14th 싱글 선발 멤버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발 3열 : 사쿠라이 레이카, 와카츠키 유미, 마츠무라 사유리, 이코마 리나, 이토 마리카, 이노우에 사유리, 호리 미오나

복신 2열 : 사이토 아스카, 타카야마 카즈미, 에토 미사, 아키모토 마나츠, 호시노 미나미

프론트 멤버(복신 1열) : 하시모토 나나미, 니시노 나나세, 후카가와 마이(센터), 시라이시 마이, 이쿠타 에리카




노기자카46은 2015년 10월 28일 발매했던 13th 싱글 '今、話したい誰かがいる(지금, 말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 앨범을 발매하며 사상 첫 70만 장 돌파를 이루었습니다. 2013년 50만 장 이상, 2014년 60만 장 이상, 2015년 7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예전보다 더욱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2016년 3월 23일에는 14th 싱글 발매를 할 예정이며 현재 센터인 후카가와 마이에게는 노기자카46 멤버로서 활동하는 마지막 싱글이 됩니다. 노기자카46 센터 및 복신 경쟁이 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마도 싱글 선발 결과에 따라 노지가카46 인기가 좌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AKB48 공식 라이벌 노기자카46의 롱런이 지속될지 앞으로가 주목됩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일본 아이돌 NGT48, 새로운 AKB48 자매그룹 등장 의미는?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걸그룹은 AKB48입니다. 끊임없는 극장 공연을 통해 항상 대중들에게 다가가며 자신들의 친숙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AKB48의 성공은 일본 아이돌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습니다. 흔히 아이돌 하면 사람들이 TV 시청을 통해 접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나 AKB48은 그 방식을 바꿨습니다. 극장에서 직접 공연을 하며 대중들과 함께 호흡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AKB48 마니아를 확보했고, NGT48 같은 AKB48 자매그룹들이 탄생하며 다양한 장소에서 극장 공연을 펼쳤습니다. AKB48 멤버를 볼 수 있는 극장이 더욱 늘었습니다.




NGT48은 AKB48 자매그룹 중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했던 걸그룹입니다. AKB48이 도쿄 아키하바라, SKE48이 나고야 사카에, NMB48이 오사카 남바, HKT48이 후쿠오카 하카타(이상 일본), JKT48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SNH48이 중국 상하이에 있는 전용 극장에서 공연을 펼쳐왔다면 NGT48은 일본 니가타현에 소재한 니가타에서 활동합니다. 지난 1월 10일 자신들의 전용 극장을 오픈했는데 당시 첫 공연 신청했던 사람들의 경쟁률이 70.5:1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 것을 보면 NGT48 향한 일본 현지의 관심이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용 인원이 입석 포함 295명인 것을 감안해도 그녀들의 첫 공연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아직 NGT48 앨범이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AKB48 자매그룹이기 때문입니다. NGT48의 등장은 AKB48의 모든 팀과 자매그룹들을 하나로 일컫는 AKB48 그룹의 영향력 확장을 의미합니다. 현실적으로 AKB48내에 있는 모든 팀들이 일본 전역에서 극장 공연을 펼치기에는 스케줄이 빠듯합니다. 이렇다 보니 도쿄 아키하바라가 아닌 다른 지역의 극장에서 활동할 자매그룹을 두었고 니가타에는 NGT48이 등장했습니다. AKB48 그룹은 NGT48 같은 새로운 자매그룹의 탄생을 통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인기를 얻을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어쩌면 니가타현 출신의 NGT48 멤버가 AKB48 총선거를 통해 AKB48 그룹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을지 모를 '만약의 시나리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NGT48 멤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카시와기 유키(柏木由紀)입니다. AKB48 팀B와 NGT48을 겸임하며 그 이전에는 AKB48 팀B와 NMB48 활동을 함께 병행했습니다. 2015년 AKB48 제7회 총선거에서는 2위를 달성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2위는 지금까지 참여했던 7번의 총선거에서 가장 높은 순위입니다.(9-8-3-3-4-3-2위) 지난 5년 동안 AKB48 총선거에서 4위 이내에 포함되었던 경쟁력을 놓고 보면 언젠가 AKB48 총선거 1위를 달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AKB48 그룹에서 강력한 인기를 얻는 카시와기 유키의 존재감은 NGT48 인지도 향상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키타하라 리에(北原里英)는 NGT48의 인기 멤버입니다. 지금까지 AKB48 팀A, 팀B, 팀K 멤버로 활동했으며 한때는 SKE48 팀S 활동과 겸임했습니다. 이제는 NGT48로 이적했으며 2016년 1월 10일 NGT48 첫 공연을 통해 NGT48 팀NIII 캡틴으로 발탁됐습니다. 지금까지 7번의 AKB48 총선거에서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가 11위(2015년)입니다.(13-16-13-13-21-19-11위) 한때는 언더 걸즈(17~32위)로 밀렸으나 2015년을 통해 선발 멤버(1~16위)로 복귀하며 자신의 경쟁력을 되찾았습니다. NGT48 팀NIII의 중심 멤버로서 앞으로의 AKB48 총선거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갑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본 최고의 걸그룹 명성을 지켜왔던 AKB48의 브랜드 파워는 지금도 막강합니다. 일본 여성 아이돌 중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중이죠. AKB48 자매그룹 NGT48은 카시와기 유키, 키타하라 리에 같은 기존 AKB48 멤버 2명과 더불어 새로운 인물 14명, 연구생(연습생) 10명과 함께 니가타를 뜨겁게 빛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NGT48이 향후 어떤 활동을 할지 주목됩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스즈키 아미, 짧지만 화려했던 그녀의 전성기

<스즈키 아미, 짧지만 화려했던 그녀의 전성기>


가수들 중에서는 특정 시기에 반짝했다가 어느 순간에 몰락하며 더 이상의 전성기를 누리지 못했던 인물들이 있습니다. 일본 JPOP도 다르지 않습니다. 1998년 데뷔했던 스즈키 아미(鈴木あみ)의 지난날 가수 행보를 살펴보면 화려한 10대 시절을 보냈으나 그때를 이후로 자신의 본래 인기를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과 2000년에 일본에서 히트했던 노래를 즐겨들었던 사람들 중에는 스즈키 아미에 대한 달콤했던 추억을 간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당시 스즈키 아미는 일본의 대형 신인 여가수였습니다.





스즈키 아미는 일본 최정상급 프로듀서이자 혼성 3인조 밴드 Globe 리더 고무로 데츠야(小室哲哉)에 의해 발굴된 아이돌이었습니다. 1998년 2월 텔레비전 도쿄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ASAYAN' 보컬리스트 오디션 파이널에서 1위를 달성하며 가수 데뷔가 성사됐습니다. 그것도 고무로 데츠야의 음악적 지원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고무로 데츠야는 90년대에 수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여러 가수들을 성공시켰던(일명 TK 사단으로 불리는) 당시 일본 No.1 프로듀서였습니다. 그가 작곡한 곡을 받으며 가수 활동을 하는 것은 스즈키 아미 같은 신인에게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1998년 당시 16세였던 스즈키 아미가 ASAYAN 오디션에 응모하면서 1위를 달성했을 때의 지원자는 무려 약 1만 3,500명이었습니다. 스즈키 아미는 약 1만 3,500명 중에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는 실력이 가장 뛰어났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의 음악적인 메리트가 얼마나 높았는지 ASAYAN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TK 사단에 새롭게 합류했던 스즈키 아미는 1998년 7월 싱글 1집 <love the island>로 데뷔했으며 그 해 발매했던 싱글 4장 모두 오리콘 차트 5위권 안에 포함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싱글 2집 <alone in my room>을 통해 1998년 제40회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 제31회 일본 유선 대상 신인상, 제31회 전 일본 유선 방송 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일본 최고의 신인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이후 스즈키 아미의 인기는 거침없었습니다. 1999년 3월 25일 발매했던 정규 1집 <SA>가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던 것과 동시에 자신의 역대 최고 앨범 판매량(1,879,430장)을 기록했습니다. 그 해 7월 14일 선보였던 싱글 7집 <BE TOGETHER>도 오리콘 차트 1위에 뽑혔으며 자신의 역대 최고 싱글 앨범 판매량(869,860장)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9년에 <BE TOGETHER><OUR DAYS><HAPPY NEW MILLENNIUM>같은 '고무로 데츠야가 제작했던' 히트곡들을 남기며 90년대 마지막을 화려하게 빛냈습니다. 또한 2000년에는 <THANK YOU 4 EVERY DAY EVERY BODY> 같은 또 다른 히트곡을 남기며 1999년에 이어 2000년 NHK 홍백가합전에 모습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스즈키 아미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01년 당시 소속사였던 에지 커뮤니케이션을 떠나면서 가수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2000년 에지 커뮤니케이션 사장의 탈세 혐의가 제기된 것이 스즈키 아미 아버지가 딸의 계약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던 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스즈키 아미 아버지는 사장 탈세 혐의가 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봐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스즈키 아미는 이듬해 소속사와의 관계를 정리했고 한동안 가수 활동을 쉬었습니다. 이때가 19세 때의 일입니다.


그러더니 2005년 에이벡스 트랙스에 둥지를 틀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싱글 13집 <Delightful> 오리콘 차트 3위 및 제47회 TBC 일본레코드대상 금상 수상으로 과거의 인기를 되찾는 것 같았으나 연이은 앨범 판매량 부진에 겹치면서 전성기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일본에서 촉망받던 젊은 가수에게 전 소속사 문제는 커다란 악재가 됐습니다. 비록 그녀의 전성기는 짧았으나 10대 중반과 후반에는 일본의 대세녀로 각광받았습니다. 현재 DJ로 활동 중인 스즈키 아미는 음악과의 인연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가수보다는 새로운 분야 활동에 비중을 두는 모양새입니다.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그녀의 열정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기원합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모모이로 클로버 Z, 다양한 매력 공존하는 일본 아이돌 걸그룹

<모모이로 클로버 Z, 다양한 매력 공존하는 걸그룹>


흔히 걸그룹 하면 발랄하면서 상큼한 이미지를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풋풋한 미모의 걸그룹 멤버들이 귀엽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그 동안 TV 및 인터넷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었죠.





하지만 일본 5인조 걸그룹 모모이로 클로버 Z(ももいろクローバーZ, MOMOIRO CLOVER Z) 콘셉트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걸그룹 이미지와 전혀 다릅니다. 다른 걸그룹들이 소화하기 힘들지 모를 독특한 의상과 기발한 안무로 무대 분위기를 장악하는 퍼포먼스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엽기적인 걸그룹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엽기적인 걸그룹 이미지로 인식하기에는 그녀들이 보유한 매력이 다양합니다. 온갖 형용사가 머릿속에서 떠올리기 쉬울 정도로 말입니다. 그것이 모모이로 클로버 Z가 높은 인기를 얻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lbrTlhX_Ww


[동영상 : 모모이로 클로버 Z <GOUNN> 뮤직비디오, 출처 : stardustdigital 유튜브 계정(모모이로 클로버 Z 소속사 스타더스트 프로모션(STARDUST Promotion) 공식 유튜브)]


모모이로 클로버 Z 멤버들의 콘셉트는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그녀들의 세련되고 화려한 무대 의상과 중독성 넘치는 멜로디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특히 의상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일본 학생들이 주로 착용하는 패션에서 세련되게 변형된 의상, 일본 및 다른 나라 전통 옷과 유사성이 짙은 의상, 멤버들의 개인별 색상(빨간색, 보라색, 녹색, 노란색, 분홍색)을 애니메이션 캐릭터 느낌이 드는 옷에 적용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때로는 난해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공연할 때가 있으나 오히려 다섯 멤버들의 이미지가 식상해지기 쉬운 단점에서 벗어나는 이점이 있습니다. 항상 같은 스타일의 의상만 고집할 수는 없으니까요.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는 전반적으로 임팩트 넘치는 노래들이 많은 인기를 얻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기세로 말입니다. 모모이로 클로버 Z는 강렬한 멜로디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다섯 멤버들이 민첩한 몸놀림과 난이도 높은 율동에 서로 똑같은 동작으로 호흡을 맞추는 춤 솜씨는 그녀들의 음악 표현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공연 때는 예측불허의 안무를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모모이로 클로버 Z 뮤직비디오 및 무대 공연 동영상을 접하면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현실 세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기분을 받기 쉽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YYhAryLnHY


[동영상 : 모모이로 클로버 Z <'『Z』の誓い> 뮤직비디오, 출처 : Momoiro Clover Z Channel 유튜브 계정(모모이로 클로버 Z 공식 유튜브)]


모모이로 클로버 Z가 가장 최근에 발표했던(2015년 4월 29일 앨범 발매) '『Z』の誓い(『Z』의 맹세)'라는 곡은 '드래곤볼 Z : 부활의 F' 주제가입니다. 다섯 멤버들이 해당 애니메이션에 특화된 의상을 착용하면서 실제 무술 동작을 자신들의 안무로 변형하여 춤추는 모습이 기발합니다. 어쩌면 모모이로 클로버 Z를 엽기적인 걸그룹으로만 인식했던 분이라면 『Z』の誓い 뮤직비디오를 보며 그녀들이 끼 많은 걸그룹임을 인지할지 모를 일입니다.


이러한 그녀들의 노력은 2012년부터 3년 연속 NHK 홍백가합전에 참가하는 영광으로 이어졌습니다. 인디즈에서 메이저 단계로 올라섰던, 일본 정상급 걸그룹으로 도약하기까지 철저하게 연습을 거듭하며 실력을 키우고 또 키우며 많은 고정 팬들을 확보했던 그녀들의 결실이 아름답게 맺어졌습니다. 비록 2015년 NHK 홍백가합전 출연이 성사되지 않았으나 모모이로 클로버 Z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홍백가합전 졸업'을 선언하며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만큼 모모이로 클로버 Z 좋아하는 팬층이 두꺼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마츠우라 아야, 깜찍한 아야야 그때가 그립다


<마츠우라 아야, 깜찍한 아야야 그때가 그립다>


사람마다 아이돌 좋아하는 취향이 서로 다르겠지만, 귀엽고 깜찍한 일본 여성 아이돌 선호하는 관점에서는 마츠우라 아야(松浦亜弥)를 머릿속에서 떠올리기 쉽습니다. '아야야(あやや)'라는 애칭으로 일본 남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마츠우라 아야는 2000년대 초반과 중반에 일본에서 화려한 주목을 끌었던 솔로 여성 아이돌입니다. 그 시절에는 층쿠 프로듀서가 음악 제작했던 하로! 프로젝트(ハロー!プロジェクト, Hello! Project)에 포함된 여성 아이돌이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일본 최고 걸그룹이었던 모닝구무스메와 더불어 하로! 프로젝트 간판이었던 아이돌이 마츠우라 아야입니다.





마츠우라 아야는 모닝구무스메 멤버가 될 뻔했던 인물입니다. 2000년 모닝구무스메 오디션 합격을 통해서 가수 활동을 준비했으나 실제로는 2001년 4월 11일 'ドッキドキ! LOVEメール(두근두근! LOVE 메일)' 싱글 앨범 발매를 통해 솔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모닝구무스메 멤버로 활동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싶은 궁금증이 느껴지기 쉬우나 결과적으로는 그녀의 깜찍한 매력이 솔로 가수로서 빛을 발했습니다. 마츠우라 아야 전성기 시절의 뮤직비디오들을 살펴보면 자신만의 귀여운 미모와 소녀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애교를 과시했던 모습이 존재감에 남습니다. 마치 여동생 같은 느낌으로 말입니다. 


아야야의 귀여움은 무대에서도 빛났습니다. 밝은 분위기의 노래를 예쁘게 부르며 남자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으니까요. 노래를 부를 때 얼굴 표정과 손짓으로 애교를 표현하면서 곡의 분위기에 따른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퍼포먼스는 섬세하고 인간미가 넘칩니다. 다른 아이돌 가수와 차별화된 자신만의 소녀 매력이 돋보였던 인물입니다. 또한 그녀는 솔로 가수 활동을 기반으로 모닝구무스메 전현직 멤버들과의 다양한 유닛 활동, 드라마, 영화, 뮤지컬 출연에 이르기까지 노래와 연기에 걸쳐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히며 종횡무진 했습니다. 아이돌로서 다양한 재능을 겸비하면서 그 능력이 골고루 뛰어났던 하로!프로젝트의 에이스였습니다.






알고 보면 마츠우라 아야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입니다. 감정이 풍부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의 음정이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곡이 절정에 이를 때 고음을 내거나 화음을 넣는 기교를 발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록 20대가 되면서 자신의 인기가 내림세로 저물었음에도 가수 활동을 유지했던 것은 철저히 트레이닝된 가창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마츠우라 아야 가수 활동의 전반부가 아야야로서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면 후반부는 차분한 느낌의 발라드 앨범을 연이어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적인 콘셉트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거듭했습니다. 더 이상 소녀 이미지가 통하지 않으면서 가창력으로 승부수를 띄웠죠.


비록 마츠우라 아야는 과거의 전성기를 재현하지 못했으나 음악적인 열정이 대단했던 가수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노래를 부르든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던 그녀의 프로 기질이 지금까지 깊은 인상에 남습니다. 2007년부터 자궁내막증에 시달렸던(그녀가 자신의 질병을 밝힌 것은 2011년) 그녀의 음악 활동은 2013년 중단됐으나 언젠가 다시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봤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2016년이면 마츠우라 아야는 30대가 됩니다. 과거에 일본 남성 팬들에게 발랄한 이미지를 선사했던 깜찍한 10대 소녀 마츠우라 아야가 이제는 30세를 앞두고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합니다. 아야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큐트(℃-ute), 이제는 하로! 프로젝트 간판 걸그룹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격언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경력 및 경험이 쌓이면서 내공을 단련하며 이전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개인이나 또는 팀을 가리킬 때 일반적으로 이러한 말이 많이 쓰입니다. 일본 걸그룹 ℃-ute(이하 큐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로 데뷔 10년 차를 맞이한 큐트의 인기, 가창력, 춤, 비주얼, 멤버 개인의 역량은 과거보다 지금이 더 좋습니다. 2000년대에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순탄치 않은 행보를 보냈으나 201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일본 정상급 걸그룹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큐트 초창기 시절에는 일본의 유명 프로듀서 층쿠(つんく)가 작사 및 작곡, 프로듀서를 담당하는 하로! 프로젝트(ハロー!プロジェクト, Hello! Project)에서 모닝구무스메(Morning Musume, 지금의 모닝구무스메。'15)와 함께 활동하는 걸그룹으로 인식되기 쉬웠습니다. 그 당시 큐트가 하로! 프로젝트에서 모닝구무스메에 가려진 걸그룹으로 비친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


로! 프로젝트가 연예 소속사 업프런트 프로모션의 모닝구무스메 인기 대박에 힘입어 결성된 층쿠패밀리(층쿠사단) 였으니까요. 층쿠가 음악 작업을 하는 대표적인 걸그룹이 모닝구무스메였고 그녀들의 성공에 힘입어 하로! 프로젝트에서 큐트가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하로! 프로젝트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걸그룹은 흔히 모닝구무스메를 꼽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모닝구무스메는 멤버들의 잦은 교체에서 비롯된 에이스급 멤버의 졸업에 의해 '일본 최고의 걸그룹'으로 명성을 떨쳤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면서 '내림세'가 굳어졌습니다. 


반면 큐트는 2명의 탈퇴, 1명의 졸업이 있었습니다만 2009년 10월 이후 6년 동안 5인조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큐트 리더 겸 하로! 프로젝트 5대 리더 야지마 마이미, 나카지마 사키, 스즈키 아이리, 오카이 치사토, 하기와라 마이는 2005년 6월 결성(2006년 10월 메이저 데뷔)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서로 함께했던 관계였습니다. 큐트를 지지하는 고정팬들의 오랜 관심과 성원을 받았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모닝구무스메와 큐트의 차이는 에이스급 멤버의 졸업 유무에서 엇갈린 명암이 갈렸을지 모릅니다. 모닝구무스메는 1기부터 멤버가 끊임없이 바뀌는 흐름이 지금까지 계속되었으며 에이스급 멤버도 예외 없었습니다. 


반면 큐트는 수준급 가창력을 기반으로 춤, 미모 등이 골고루 뛰어나면서 이러한 능력이 다른 아이돌보다 월등한 아우라를 뽐내는 스즈키 아이리가 여전히 에이스로서 건재합니다. 여기에 오카이 치사토 포함한 다른 멤버들의 개인 역량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어필되면서 큐트의 인지도가 날이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오카이 치사토의 경우 노래에 맞춰 혼자서 춤추는 장면이 유튜브에서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자신이 가수로서 실력이 좋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마츠우라 아야 'LOVE 涙色' 영상에서는 직접 노래까지 불렀습니다.)




과거의 큐트는 멤버 탈퇴 및 졸업, 일부 앨범 인기 저조, 소속사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던 문제점에 직면하며 인기가 들쭉날쭉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에 이르러 달라졌습니다. 기존 악재들이 사라지면서 그녀들만의 깜찍하고 때로는 강렬한 매력이 사람들의 공감대를 점점 높였습니다. 여기에 인상 깊은 라이브 공연까지 더해지면서 큐트의 내실이 점점 탄탄하게 발전했습니다. 이제는 하로! 프로젝트의 간판 아이돌로 자리 잡은 큐트가 앞으로도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며 롱런할지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마츠다 세이코, '영원한 아이돌' 신화는 계속된다

<마츠다 세이코, '영원한 아이돌' 신화는 계속된다>


NHK 홍백가합전은 일본 공영방송 NHK가 매년 12월 31일 저녁에 방영하는 음악 프로그램입니다. 그 해를 빛낸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여 일본 내에서 전통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더 나아가 일본에서 가장 권위 높은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이 확고합니다. 


이는 NHK 홍백가합전을 시청하며 한 해의 마지막 날 저녁을 보내는 일본인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특히 NHK 홍백가합전에서 가장 마지막에 노래를 부르는 오오토리(大トリ)를 맡는 가수에게는 영광스러운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명예를 얻습니다.






2014년 NHK 홍백가합전 오오토리는 홍팀의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에게 돌아갔습니다. 마츠다 세이코는 'あなたに会いたくて〜Missing You〜(1996년 발표, 싱글 40집 수록)'라는 발라드 곡을 부르며 18세였던 1980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오오토리를 맡았습니다. 노래를 불렀을 때 2014년 NHK 홍백가합전 최고 시청률 1위(47.5%) 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그녀의 인기가 여전히 일본 최정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한 아이돌(永遠のアイドル)' 마츠다 세이코는 지금까지 35년 동안 일본 최정상급 여자 아이돌 자존심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아이돌 하면 가장 떠올리기 쉬운 이미지는 젊은 가수입니다. 하지만 아이돌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우상 같은 존재를 말합니다. 마츠다 세이코는 1980년대 일본 남성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아이돌이었으며 지금도 그 인기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심지어 지금의 일본 청년 세대에서도 인기 높은 여성 아이돌 중에 하나로 손꼽힙니다. 


가수 활동 초기의 아름다운 미모와 더불어 무대에서 귀엽고 깜찍하면서 때로는 청순함이 묻어나는 그녀만의 애교 넘치는 매력이 일본 남성 팬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여기에 뛰어난 가창력이 뒷받침되면서 댄스와 발라드를 가리지 않고 여러 노래의 완성도를 높이며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마츠다 세이코 콘서트는 항상 많은 관객을 운집시켰습니다.






한편으로는 마츠다 세이코 하면 악녀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녀의 남자관계는 늘 시끄러웠습니다. 세 번의 결혼(1985년, 1998년, 2012년)과 두 번의 이혼(1997년, 2000년) 경력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여기에 기자회견을 통해서 자신과 사귀었던 남자 몰래 이별을 선언했던 것, 결혼 이후 다른 남자와 몰래 만났다는 이야기 등에 이르기까지 남자관계에 대하여 그 동안 말이 많았습니다. 사생활이 매끄럽지 않았던 인물임에는 분명합니다만 그녀의 인기는 완전히 꺾이지 않았습니다. 


무대에서 애교 넘치는 기질을 과시하는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성 아이돌로서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그녀의 재주가 남달랐습니다. 그녀가 오늘날까지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츠다 세이코는 1980년대 일본 최고의 여자 아이돌이자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35년 동안 일본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활발히 앨범을 발매중이며, 콘서트 활동을 하며, TV 프로그램 및 CF에 출연하는 그녀의 음악 활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수많은 여성 아이돌이 탄생했지만, 마츠다 세이코처럼 35년 동안 건재함을 과시하며 여성 아이돌 이미지를 계속 이어갔던 인물은 드물었습니다. '영원한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 신화는 계속됩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일본 최고의 걸그룹 "모닝구무스메"


앨범 5만 장 판매가 이루어낸 기적


일본 여자 걸그룹 하면 AKB48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일본 최고의 여자 걸그룹으로 손꼽히는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예전에 J-POP 즐겨 들었던 분이라면 AKB48보다는 모닝구무스메(モーニング娘。, Morning Musume。/ 현 명칭 : モーニング娘。'15)가 더욱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모닝구무스메 인기는 지금의 AKB48처럼 일본 걸그룹 No.1으로 군림했으며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했습니다. 한국에서 1998년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대중문화가 순차적으로 개방되는 시점에 많은 인기를 모았던 일본 걸그룹이 모닝구무스메입니다.

 

 

평소 모닝구무스메 근황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현재 모닝구무스메 멤버가 몇 명이지?'라는 생각을 하기 쉬울 겁니다. 그들의 현재 노래보다는 멤버 인원수, 기존 멤버의 졸업 여부 등을 주목하기 쉽죠. 그런데 모닝구무스메 멤버 숫자에 대해서는 쉽게 답변하기 어려울 겁니다. 


12기 멤버 4명이 포함된 현재 모닝구무스메 멤버는 13명(1997년 모닝구무스메 데뷔 이후에 태어난 멤버들이 상당수 포함!)이나 이들 중에 1기 때부터 활동했던 인물은 없습니다. 멤버 교체가 잦다 보니 활동 인원이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멤버 숫자가 줄어들거나 아니면 늘어날 수도 있겠죠. 한때 모닝구무스메 멤버는 16명(2003년)으로 불어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모닝구무스메 하면 '멤버 많은 걸그룹'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우나 이들이 데뷔했을 때의 멤버 숫자는 5명입니다. '왕언니' 나카자와 유코(2001년 졸업, 1대 리더) 후쿠다 아스카(1999년 졸업) 이시구로 아야(2000년 졸업) 아베 나츠미(2004년 졸업) 이이다 카오리(2005년 졸업, 2대 리더)가 모닝구무스메 초기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2기와 3기 멤버가 투입되면서(1기 멤버 2명 졸업) 7~8명을 유지했습니다만 이때까지는 멤버가 많이 늘어났던 편은 아니었습니다.

 

[동영상 : モーニング娘。 『恋愛レボリューション21』 (MV), 출처 : モーニング娘。’15 공식 유튜브]

 

심지어 모닝구무스메가 5명이었을 1기 시절의 음악 스타일과 멤버들의 이미지는 전성기 시절과 전혀 달랐습니다. 모닝구무스메 주요 히트곡들을 들어보면 발랄하면서 신나는 느낌을 접하게 됩니다. <LOVEマシーン>(싱글 7집, 1999년 발매), <ハッピーサマーウェディング(Happy Summer Wedding)>(싱글 9집, 2000년 발매), <恋愛レボリューション21(Love Revolution21)>(싱글 11집, 2000년 발매), <そうだ!We're ALIVE>(싱글 14집, 2002년 발매) 등의 히트곡이 대표적이죠. 과거에 모닝구무스메 좋아했거나 J-POP에 푹 빠졌던 분들에게 익숙한 노래들입니다.

 



 

반면 5인조였던 초기의 모닝구무스메 노래는 풋풋한 느낌이 뚜렷하게 강조됐습니다. 모닝구무스메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시작했던 <愛の種>(인디즈 싱글 -싱글 0집-, 1997년 발매), <モーニングコーヒー>(싱글 1집, 1998년 발매)를 들어보면 댄스 걸그룹이라는 지금의 이미지와 전혀 달랐습니다. 느린 템포의 조용한 분위기에서 멤버들의 수수한 매력이 생생하게 드러났습니다.

 

[동영상 : モーニング娘。 『愛の種』 (MV), 출처 : モーニング娘。’15 공식 유튜브]

 

특히 <愛の種>이라는 노래는 지금의 모닝구무스메를 있게 했던 존재였습니다. 일본 TV 도쿄 오디션 프로그램 ASAYAN에서 오디션 탈락했던 5명의 여성들이 메이저 데뷔를 조건으로 인디즈 싱글 <愛の種> 5만 장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것도 여성 5명이 직접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앨범 판매에 분주했던 그녀들의 노력은 앨범 완판의 결실로 이어졌고 이듬해 메이저 데뷔를 이루었습니다. 그 5명이 바로 지금의 모닝구무스메 1기입니다. 앨범 5만 장 판매가 이루어낸 기적이 훗날 일본 최고의 걸그룹으로 도약하는 밑바탕이 됐습니다.

 

*사진 출처 : 모닝구무스메 공식 홈페이지

저작자 표시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