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스에 료코의 힘!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 사랑이 필요해...



꽤 오래된 작품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2002년이면 대한민국은 한일월드컵으로 뜨거울대로 뜨거워진터라 드라마 볼 겨를이 없었긴 해요.

과거 조인성과 송혜교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원작인 사랑따인 필요없어, 여름

사실 지독하리만치 가슴을 저밀게 만드는 쓸쓸한 사랑이란 겨울만의 전유물쯤이라 가볍게 단정지었던 것이 사실인데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을 시청하다보면 그 말이 마냥 정답이 아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작품 속 계속해서 울어대는 한여름의 매미소리나 아코의 집안 정원에서 호스로 흩뿌려지는 물줄기, 한여름밤의 축제와 반딧불까지... 겨울에 쓸쓸함과는 달리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고, 잡힐 것만 같은 그 아련함이란....





작품의 내용은 계절적인 배경만 제외하면 한국에서도 방영되었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비슷합니다. 물론 리메이크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죠~


사랑하는 연인 시오리가 자살을 택한 후, 나에게 "사랑따윈 필요없어"로 일관하며 온갖 가면을 쓴 채로 사랑을 연기하는 가부키쇼의 넘버원 호스트 레이지....

그는 자신이 지고 있는 어마무시한 빚을 갚기 위해 자신과 동명이인이었던 동생 타메고로이 죽음 이후 막대한 유산을 얻게 된 아코의 오빠를 연기하기도 마음 먹게 됩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아코는 이미 마음까지 닫혀버린 상태로 오래 전 헤어졌던 오빠와이 첫만남에서 생채기까지 내게 만드는 얼음장같은 여인이었습니다. (이거 일이 쉽게 풀리지 않겠는데요~)

하지만 오빠라고 믿었던 레이지와의 만남을 통해 아코는 조금씩 웃음을 되찾기 시작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품어서는 안될 감정까지 깨우치기 시작하는데...


영화 [철도원]을 통해 90년대 일본의 국민여동생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고, 국내에서도 신드롬에 가까운 사랑과 인기를 동시에 받았던 히로스에 료코 주연작입니다. 하지만 실제 작품 속의 맹인 아코역을 연기하기 위해 그녀는 일부러 살을 찌우고 메이크업마저 스킵하면서 초반 그녀에게서는 영화 [철도원], [비밀]에서와 같은 사랑스러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데요.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그런 그녀의 프로정신이 작품 제목 그대로 사랑따윈 필요없어 보이는 아코 그 자체였으니까요...


아코...도대체 왜 저 사람은 비난하지 않는거니...? 내 오빠니까요... 저 사람이 네 친오빠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저 내가 가진 재산을 노린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사랑하니까요... 내가 오빠를 사랑하게 되어버렸으니까요...





맹인이 된 동시에 마음까지 닫아버리고만 슬픈 소녀.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에 타인에게도 사랑 대신 상처밖에 줄 수 없었던 아코는 레이지를 만나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합니다.

웃음을 찾아가고 익숙하지 않았던 사랑이란 감정에 눈을 떠가는 모습이란 그녀가 정원에서 매 만지곤 했던 꽃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요. 땅 속에서 모습조차 보이지 않다가도 사랑과 정성으로 어루만지자 어느새 싹을 틔우고, 어느새 봉오리를 맺어 꽃을 피우는 그런 모습을 연기하는 히로스에 료코의 모습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송혜교가 연기했던 주인공은 차갑지만 사랑이 절실해 보였던 여인이었는데요.

반면 원작인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의 주인공인 히로스에 료코가 연기했던 아코는 초반 정말 사랑이 필요없을 것만 같은 얼음장같은 여인이었습니다. 





아코와 레이지의 첫 만남부터 사랑따윈 필요없다며 그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는 아코의 모습,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레이지의 모습은 마치 "나와 너는 많이 닮았다"라는 느낌을 전해받았는데... 그 느낌이 한국판에선 많이 다르더라고요~





한드와는 달리 10편에 불과한 작품인지라 첫 마음가짐은 '그냥 가볍게 보자'였는데 나중에 오프닝에서부터 눈물이 나버릴 것 같은 복잡한 감정때문에 새벽까지 붙들고 끝까지 시청해버렸네요. 영화 [비밀]과 [철도원]으로 인해 그냥 귀여운 소녀이미지로 남아있었던 히로스에 료코의 연기 스펙트럼을 볼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