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B48, 역사에 남을 일본 최고의 걸그룹



<AKB48, 역사에 남을 일본 최고의 걸그룹>


AKB48이 일본 최고의 걸그룹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010년대 이후에는 일본 걸그룹을 기준으로 'AKB48 1강 체제'가 굳건하게 지속됐습니다. 현재 AKB48은 일본 역대 앨범 판매량 6위를 기록 중이며 그중에 싱글 판매량은 1위를 질주하는 중입니다. 남녀 아이돌 통산 앨범 판매량 1위를 휩쓴 AKB48의 엄청난 영향력은 향후 그녀들 이후에 활동할 걸그룹 세대들이 이루기 힘든 성과입니다.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일본 최고의 걸그룹입니다.





[사진 : AKB48 43th 싱글 '君はメロディー(너는 멜로디)' Type A 초회한정반 이미지, 사진 출처 : AKB48 공식 홈페이지 메인(akb48.co.jp)]


흔히 아이돌 하면 소속사에 의해 체계적으로 육성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이는 일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소속사를 통해서 발굴된 아이돌이 많습니다. 하지만 AKB48의 전략은 달랐습니다. '会いに行けるアイドル(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모토로 대중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전용극장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펼쳤습니다. 사람들에게 TV 속에서 볼 수 있는 아이돌을 오프라인 극장에서 직접 관람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세웠습니다. 이때가 2005년입니다. AKB48 첫 공연 일반 관람객이 7명에 불과할 정도로 그 당시에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아이돌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당시 AKB48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아이돌이라는 점에서 자신들의 인지도를 끌어올리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진 : AKB48 도쿄 아키하바라 극장 모습, 사진 출처 : AKB48 공식 홈페이지(akb48.co.jp)]


그러나 AKB48의 집념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극장에서 항상 대중들과 교감을 나누며 사랑을 받는 '방향'에 더 많은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러한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마침내 AKB48 극장은 일본에서만 다섯 곳(AKB48 -도쿄 아키하바라-, SKE48 -나고야 사카에-, NMB48 -오사카 남바-, HKT48 -후쿠오카 하카타-, NGT48 -니가타 반다이시티-) 해외에서 두 곳(JKT48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SNH48 -중국 상하이-)으로 늘었으며 AKB48 내에 속하는 팀들(팀A, 팀K, 팀B, 팀4, 팀8)과 자매그룹을 통칭하는 AKB48 그룹 멤버는 연구생(연습생) 포함 시 약 300명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AKB48 및 자매그룹의 공연을 직접 관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팬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면서 마침내 AKB48 인기가 일본 최정상급에 도달했습니다.


AKB48이 기존의 걸그룹과 차별화를 두는데 있어서 '총선거, 가위바위보 대회, 악수회'는 일본 여론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는 이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총선거와 가위바위보 대회가 다음 앨범 싱글 선발 멤버를 가리는 이벤트라면 악수회는 AKB48 멤버들과 팬들이 함께 손을 잡고 악수하면서 짧은 시간 동안 만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총선거입니다. 팬들이 다음 앨범 싱글 선발에 나설 AKB48 멤버를 뽑는 행사입니다. 워낙 AKB48 그룹 내에 있는 멤버들이 많다 보니 모두가 싱글 앨범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팬들이 투표를 통해 선발 멤버를 가립니다. 총선거를 통해 AKB48 그룹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멤버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 : AKB48 팀B 멤버이자 솔로 활동 중인 와타나베 마유. 2014년 AKB48 총선거 1위이자 7년 연속 카미7(AKB48 총선거 상위 7명을 말함)에 포함된 유일한 인물입니다.(4-5-5-2-3-1-3위) 사진 출처 : AKB48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akb48.co.jp)]


*역대 AKB48 총선거 1위

2009년 : 마에다 아츠코(AKB48 팀A)

2010년 : 오오시마 유코(AKB48 팀K)

2011년 : 마에다 아츠코(AKB48 팀A, 2년 만에 1위 등극, 2012년 8월 졸업)

2012년 : 오오시마 유코(AKB48 팀K, 2년 만에 1위 등극, 2014년 6월 졸업)

2013년 : 사시하라 리노(HKT48 팀H)

2014년 : 와타나베 마유(AKB48 팀B)

2015년 : 사시하라 리노(HKT48 팀H, 2년 만에 1위 등극)


AKB48 총선거는 일본에서 커다란 이슈를 불러일으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AKB48 멤버의 순위가 몇 위인지, 누가 1위 했는지, 싱글 선발 멤버(1~16위) 및 언더걸즈(17~32위) 등이 과연 누구인지 등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다 보니 AKB48 총선거는 일본 후지TV에 의해 생중계 되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워낙 많은 AKB48 그룹 멤버들이 싱글 선발 및 1위 여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다 보니 그녀들을 향한 이슈가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총선거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새롭게 급부상하는 멤버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AKB48의 독주가 장기간 지속되는데 있어서 AKB48 총선거 도입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습니다.


AKB48은 2011년과 2012년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걸그룹으로 거듭났으며 지금도 그 기세는 변함없습니다. 얼마 전 발매했던 43th 싱글 '君はメロディー(너는 멜로디)' 첫날 판매량은 무려 113만 장을 기록할 정도로 여전히 엄청난 앨범 판매량을 과시합니다. 비록 AKB48 최근 인기가 예년에 비해 주춤한 느낌이 없지 않으나 아직까지 그녀들을 뛰어넘을만한 걸그룹 및 여자 솔로 아이돌 가수는 딱히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AKB48 독주는 한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시리쓰에비스추가쿠, 영원한 중학생 추구하는 걸그룹

<시리쓰에비스추가쿠, 영원한 중학생 추구하는 걸그룹>


일본에는 시리쓰에비스추가쿠(私立恵比寿中学, 사립에비스중학)라는 '영원한 중학생'을 콘셉트로 내세우는 8인조 걸그룹이 있습니다. 평균 연령 17세의 걸그룹으로서 시리쓰에비스추가쿠 1학년 B조라는 가상의 학교를 다니는 중학생 이미지를 강조합니다. 그렇다고 전 멤버가 중학생인 것은 아닙니다. 10대 후반에 속하는 멤버들이 있어요. 이들은 그룹 내에서는 중학생으로 설정됐습니다. 중학교 4학년 및 중학교 5학년으로 말입니다. 전학하기 전까지(실제로는 탈퇴) 영원한 중학생입니다. 멤버 8명 전원은 출석 번호가 부여됐습니다. 결번 포함 시 1번부터 12번까지 설정됐습니다. 다른 아이돌에 비하면 자신들만의 콘셉트가 독특합니다.





[사진 : 시리쓰에비스추가쿠, 사진 출처 : 시리쓰에비스추가쿠 공식 블로그 메인 (ameblo.jp/shirituebichu)]


알고 보면 일본에서는 10대 초반이나 중반 연령에 속하는 여성 아이돌 멤버들이 활동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인디즈 아이돌(지하 아이돌)까지 포함하면 말입니다. 심지어 90년대 일본 최고의 걸그룹으로 회자되는 SPEED는 데뷔 당시 멤버들의 나이가 12~15세로서 초등학생 및 중학생 연령대에 속했습니다. 하지만 시리쓰에비스추가쿠처럼 그룹 이름부터 중학교를 언급하면서, 영원한 중학생 콘셉트를 추구하면서, 일본에서 지속적인 인기까지 확보했던 걸그룹은 흔치 않았습니다. 이는 시리쓰에비스추가쿠만의 독창적인 전략이 적중했음을 뜻합니다.


시리쓰에비스추가쿠는 일본 정상급 걸그룹 모모이로 클로버 Z를 발굴했던 스타더스트 프로모션에 의해 2009년 결성 및 2012년 메이저 데뷔했던 아이돌입니다. 모모이로 클로버 Z는  뮤직비디오 및 라이브 공연을 통해서 기발한 퍼포먼스와 독특한 의상을 선보이는 팀입니다. 반면 시리쓰에비스추가쿠는 이들과 달리 음악적인 차별화가 뚜렷하지 않으나 자신들만의 개성이 확고합니다.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중학생 취향의 소프트한 음악을 전파하면서 멤버들의 귀여운 이미지를 내세웁니다. 그녀들의 뮤직비디오를 봐도 일본의 여자 중학생들이 하나의 팀으로 뭉쳐서 노래와 춤을 소화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룹 이름과 팀의 이미지, 음악까지 중학생에 최적화됐습니다.





[사진 : 시리쓰에비스추가쿠, 사진 출처 : 시리쓰에비스추가쿠 공식 트위터 프로필 사진(twitter.com/ebichu_staff)]


시리쓰에비스추가쿠는 그룹 결성부터 메이저 데뷔까지 3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인디즈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꾸준한 음악적 내공을 연마했습니다. 멤버 변화 또한 잦았습니다. 처음에는 5명으로 시작했으나 한때 12명으로 불어나면서 멤버 구성을 통한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인고의 과정 끝에 2012년 메이저 데뷔 후 다수의 싱글 앨범이 오리콘 차트 위클리 및 데일리 3위권 이내에 포함되면서 일본 인기 걸그룹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싱글 3th '梅(매화)', 6th 'バタフライエフェクト(버터플라이 이펙트)', 7th 'ハイタテキ!(하이타테키)'는 오리콘 차트 데일리 1위를 기록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매했던 싱글 9th 'スーパーヒーロー(슈퍼히어로)'는 오리콘 차트 위클리 3위 및 데일리 2위에 안착했습니다.


이러한 시리쓰에비스추가쿠의 행보에 있어서 멤버들의 평균 연령 상승은 앞으로의 인기와 팀의 콘셉트 유지를 좌우하는 커다란 변수가 될 것입니다. 이미 8명의 평균 연령이 17세라는 점에서 기존 멤버들로 중학생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내세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 멤버 8인방을 유지할지 아니면 10대 후반 이상의 멤버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중학생 멤버를 보강하여 중학생 콘셉트에 충실할지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그룹 이름부터 중학교 느낌이 묻어난다는 점에서 멤버 변화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싶으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팀의 인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과연 시리쓰에비스추가쿠가 영원한 중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일본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히로스에 료코, 아이돌 시절이 최전성기였다


<히로스에 료코, 아이돌 시절이 최전성기였다>


히로스에 료코(広末涼子)는 한국인들에게 오랫동안 많은 인기를 누렸던 일본 여성 연예인 중에 한 명입니다. 예전에 히로스에 료코 단발머리 사진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봤던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녀만의 귀엽고 깜찍한 매력은 한국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자신의 이상형 또는 여동생 같은 친근한 이미지로 말입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단발머리는 지금에 이르러 '히로스에 료코 리즈 시절'을 상징하는 추억의 모습으로 회자되는 중입니다. 현재는 일본 배우 노넨 레나 단발머리 사진이 한국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는 중이나 그 이전에는 히로스에 료코가 있었습니다.




[사진 = 2014년 일본 NHK 드라마 <성녀(聖女)에 출연했던 히로스에 료코, 사진 출처 : 성녀 공식 홈페이지 메인(nhk.or.jp/drama10/seijo)]



한국에서 히로스에 료코 향한 관심이 커졌던 계기는 그녀가 출연했던 일본 영화 <철도원>(1999년 작품, 한국에서 2000년 개봉)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단발머리 소녀가 경례 자세를 취했던 모습이 담긴 철도원 포스터가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어냈습니다. 그 소녀가 바로 철도원 여주인공 히로스에 료코였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동네에서 비디오 대여점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철도원 포스터가 사람들에게 눈에 띄었던 것이 아마도 비디오 대여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게 앞에 영화 포스터들이 부착되어 있기 때문이죠. 어쨌든 영화 철도원은 히로스에 료코 포스터 모습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았습니다.


히로스에 료코는 수많은 영화 및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한국인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평소 일본 영화 및 일본 드라마 시청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로스에 료코 출연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셨을 겁니다. 10대와 20대, 30대 중반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배우로서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는 중입니다. 그동안 여러 안 좋은 루머에 휩싸였음에도 배우로 꾸준한 건재함을 과시했던 것은 그녀의 연기력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알고 보면 2014년 히로스에 료코 불륜설 등의 루머가 그녀의 여전한 인기를 실감케 합니다. 참고로 2014년 히로스에 료코 불륜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사진 : 히로스에 료코, 사진 출처 : 히로스에 료코 소속사 FlaMme 공식 홈페이지(flamme.co.jp)]



히로스에 료코의 본업은 배우이나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하이틴 스타로 각광받던 시절에는 가수와 배우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1997년 4월 15일 발매했던 싱글 1집 수록곡 'MajiでKoiする5秒前(정말로 사랑하기 5분전)'이 오리콘 차트 주간 2위로 히트하면서 자신의 노래를 통해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2개월 뒤였던 6월 25일에는 싱글 2집 '大スキ!(정말 좋아!)'를 발매하면서 오리콘 차트 주간 1위를 달성했습니다. 그 기세에 힘입어 그 해 12월 31일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하며 여자 아이돌 솔로 가수로서의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大スキ!는 뮤직비디오 및 공연을 통해서 당시 10대 소녀였던 히로스에 료코만의 귀엽고 상큼한 느낌이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중독성 넘치는 노래 멜로디를 더욱 신나게 하는 그녀의 발랄한 몸짓과 얼굴 표정이 大スキ!를 히트시켰던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 노래와 더불어 데뷔곡 MajiでKoiする5秒前 및 싱글 4집 summer sunset 뮤직비디오 또한 히로스에 료코 특유의 귀여운 매력이 넘쳐흘렀습니다. MajiでKoiする5秒前 뮤직비디오가 일본 소녀의 풋풋한 모습이 묻어났던 작품이라면 summer sunset 뮤직비디오는 히로스에 료코가 착용했던 파란색 가디건과 하얀색 원피스가 바다와 잘 어울리며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과시했습니다.


히로스에 료코는 2000년 싱글 7집 앨범 '果実(과실)'을 끝으로 더 이상의 싱글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습니다. 앨범 판매 순위가 점점 떨어졌던 이유 때문인지 아이돌 가수로 보냈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자신의 본업인 배우 활동에 충실하며 음악과 거리감을 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선택이 옳았을지 모릅니다. 아이돌 가수로서 오랫동안 귀여운 이미지를 추구하기에는 자신의 매력을 과다 소비하는 단점이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 아이돌 가수로서 짧고 굵은 존재감을 과시하며 자신의 최전성기를 보냈던 히로스에 료코의 과거는 오래전 그녀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달콤한 추억거리로 회자될 것입니다.



SUPER☆GiRLS, 귀엽고 깜찍한 일본 걸그룹


<SUPER☆GiRLS, 귀엽고 깜찍한 일본 걸그룹>


걸그룹 하면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 콘셉트에 걸맞은 일본 걸그룹 중에서 SUPER☆GiRLS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SUPER☆GiRLS의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공연을 접할 때마다 걸그룹 특유의 상큼하고 발랄한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아마도 그녀들의 노래를 듣는 사람 중에는 순간적으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마음을 느끼기 쉬울 겁니다. 평소 일본 걸그룹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SUPER☆GiRLS를 더욱 친숙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 : SUPER☆GiRLS, 사진 출처 : SUPER☆GiRLS 공식 홈페이지 메인(supergirls.jp)]



[동영상 : SUPER☆GiRLS 싱글 10th '花道!!ア〜ンビシャス(꽃길!!아~앰비셔스!)' Short Ver 동영상 출처 : AVEX 공식 유튜브]


SUPER☆GiRLS는 2010년 12월 22일 1집 앨범 '超絶少女(초절소녀)' 발매로 일본 가요계 데뷔했던 걸그룹입니다. 당시 12명이었으나 현재 11명이 활동중입니다. 이들은 일본 연예 기획사 AVEX의 iDOL Street 레이블에 속했습니다. iDOL Street에 소속된 걸그룹 중에서는 SUPER☆GiRLS가 가장 먼저 결성되었으며 싱글 앨범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iDOL Street에 소속된 다른 걸그룹보다 인기가 좋은 편에 속합니다.


일본 걸그룹 SUPER☆GiRLS가 높은 인기를 얻었던 원동력으로서 AVEX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SUPER☆GiRLS는 2010년 연말에 데뷔했으나 이들은 그 이전부터 일본 대중들에게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AVEX는 2009년 12월 <AVEX 아이돌 오디션 2010>이라는 오디션을 진행했으며 그 과정이 일본 BeeTV에서 중계됐습니다. 총 7천 명이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거듭된 심사를 통해 그 규모가 점점 줄어들면서 마침내 2010년 6월 12일 최종 심사 결승 대회를 통해 SUPER☆GiRLS에 합류할 인원이 12명으로 확정됐습니다. 이들은 AVEX 주최 및 AVEX 소속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a-nation'10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펼쳤으며 도쿄 아이돌 페스티벌 2010을 포함한 다양한 공연 및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정식 데뷔 이전부터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 결과 SUPER☆GiRLS는 팬들을 차츰 늘리며 싱글 1th부터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안착했습니다. 그러더니 2011년 10월 5일 발매했던 싱글 3th '女子力←パラダイス(여자력←파라다이스)는 오리콘 차트 데일리 1위 및 주간 2위를 달성(앨범 약 5만 7천 장 판매)하며 대중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012년에는 싱글 5th 'プリプリ♥SUMMERキッス(뿌리뿌리♥SUMMER키스)'가 앨범 약 9만 2천 장(오리콘 차트 데일리 2위, 주간 4위), 2013년에는 싱글 7th '常夏ハイタッチ(상하하이터치)'가 앨범 약 8만 7천 장(오리콘 차트 데일리 및 주간 3위)의 판매량을 나타내며 자신들의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사진 : SUPER☆GiRLS 현재 멤버 11명, 사진 출처 : SUPER☆GiRLS 공식 홈페이지 메인(supergirls.jp)




[사진 : 마에시마 아미, SUPER☆GiRLS 멤버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입니다, 사진 출처 : SUPER☆GiRLS 공식 홈페이지 메인(supergirls.jp)]



[동영상 : SUPER☆GiRLS 싱글 2th 'MAX!乙女心(MAX ! Z여심)', 동영상 출처 : AVEX 공식 유튜브]



SUPER☆GiRLS 뮤직비디오 중에는 그녀들만의 귀엽고 신나는 이미지가 뚜렷하게 표현된 콘텐츠가 다수 있었습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깜찍한 율동을 취하면서 활기 넘치는 모습을 충분히 발휘했습니다. 자신들이 어떤 매력을 지닌 걸그룹인지 그동안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증명하며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SUPER☆GiRLS 뮤직비디오 및 음악 등을 접하면서 신나는 기분을 만끽하는 사람이라면 그녀들의 매력에 관심을 나타내기 쉬울 것 같습니다. SUPER☆GiRLS 음악은 접근성이 쉬운 편이어서 그녀들의 친근한 매력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다만, SUPER☆GiRLS의 오랜 인기가 지속되려면 사람들의 긍정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매력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일정한 인지도를 얻는 추세였다면 이제는 일본 정상급 걸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강력한 임팩트를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SUPER☆GiRLS의 앞날이 점점 밝아질지 향후 행보가 기대됩니다.

나카야마 미호, 러브레터 주인공은 아이돌이었다


나카야마 미호, 러브레터 주인공은 아이돌이었다


일본 영화 명대사 하면 쉽게 떠오르는 장면은 1995년 영화 <러브레터>에서 여자 주인공이 외쳤던 "오겡끼데스까(おけんきですか?, 잘 지내시나요?)"입니다. 그 대사 때문에 한국에서 러브레터가 많은 화제를 모았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잊히지 않습니다. 러브레터는 한국에서 1999년에 개봉되었는데 그때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었던 때였습니다. 러브레터를 통해서 일본 영화를 포함한 일본 대중문화에 흠뻑 빠졌던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면서 러브레터 여자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中山美穂)의 이름이 한국에서 많이 알려졌습니다. 알고 보면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입니다.




[사진 : 나카야마 미호, 사진 출처 : 나카야마 미호 오피셜 팬 클럽 사이트(nakayama-miho.net)]



나카야마 미호는 일본의 배우 겸 가수입니다. 배우로서 한국인들에게 러브레터 오겡끼데스까로서 인지도를 높였다면 가수로서는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세상의 그 누구보다 분명)이라는 히트곡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는 일본 남성 밴드 WANDS와 콜라보 호흡 맞췄던 나카야마 미호의 싱글 25집으로서 1992년 10월 28일 발매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앨범 판매량 183만 장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으며 그 당시 일본 여성 가수의 싱글 곡 역대 1위의 매출을 자랑했습니다. 이 노래를 들어보면 '이거 한국 노래 아니었어?'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쉬울 겁니다. 포지션 <그 해 겨울은>(2000년 발매) 더 넛츠 <사랑의 바보>(2004년 발매)의 원곡이 바로 나카야마 미호 & WANDS의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였습니다.


한국에서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는 WANDS 노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원곡이 여러 형태의 버전으로 파생된 영향 때문일지 모릅니다. WANDS 앨범에서도 따로 수록되었던 전례가 있었죠.(1993년 오리지널 앨범 '時の扉'에 수록) 하지만 일본에서 크게 히트했던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는 나카야마 미호가 노래, WANDS가 코러스 및 연주를 맡았습니다. 라이브 공연에서는 나카야마 미호가 무대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WANDS 멤버들이 그 뒤에서 각자의 역할에 집중했습니다. 실제 앨범에서는 1992년 나카야마 미호 싱글 25집으로 발매되면서 183만 장의 판매량을 올렸습니다. 심지어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는 1992년 나카야마 미호가 NHK 홍백가합전에서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그때도 WANDS와 함께 협연했습니다.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는 나카야마 미호가 2015년 후지TV에서 방영되었던 FNS 가요제에서 불렀던 노래 중에 하나였습니다.(다른 한 곡은 1994년 노래였던 ただ泣きたくなるの -그냥 울고 싶어져요-) 당시 FNS 가요제에서는 나카야마 미호의 데뷔 30주년 기념 라이브 공연이 성사됐습니다. 그녀가 18년 만에 정식적으로 TV 프로그램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죠. 다르게 표현하면 21세기 이후 최초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오랫동안 배우 활동에 집중했던 나카야마 미호가 가수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론의 신선한 자극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진 : 후지TV에서 진행했던 2015년 FNS 가요제 출연자 명단에 포함되었던 나카야마 미호. 사진 출처 : 후지TV FNS 가요제 공식 홈페이지(fujitv.co.jp/FNS/2015/index.html)]



나카야마 미호 가수 활동하면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을 떠올리기 쉬우나 실제로는 아이돌 가수로서 엄청난 활약상을 과시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 각광받았던 여성 아이돌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NHK 홍백가합전 출장 7회(1988~1994년) 및 FNS 가요제 1998년 그랑프리 수상(Witches라는 노래로 수상),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 2회, 1993년 제6회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 여성 아이돌 부문상 등에 이르기까지 여성 아이돌 솔로 가수로서 눈부신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영화계 활약 또한 대단했습니다. 1995년 영화 <러브레터>를 계기로 블루리본상을 포함한 4개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달성했으며 1997년 상영되었던 <도쿄 맑음>에서는 이듬해였던 1998년 제21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가수와 배우로서 승승장구했던 나카야마 미호의 전성기 시절 활약상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 깊은 추억으로 회자되는 중입니다. 특히 나카야마 미호가 2015년 FNS 가요제에서 노래를 불렀던 모습은 과거 그녀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기분 좋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향후 그녀가 가수 활동을 다시 시작할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전설적인 여성 아이돌 가수로 활동했던 클래스는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입니다.

노기자카46, 공식적인 AKB48 라이벌 걸그룹! 두 일본 아이돌간의 격돌이 기대된다.

노기자카46, 공식적인 AKB48 라이벌 걸그룹


노기자카46(乃木坂46)의 2015년 NHK 홍백가합전 첫 참가는 일본 정상급 걸그룹 반열에 완전히 올라섰음을 의미합니다. 2015년을 화려하게 빛냈던 그녀들의 굳건한 인기를 놓고 보면 NHK 홍백가합전 등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노기자카46의 NHK 홍백가합전 첫 출장 타이밍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싱글 앨범 판매량 12번 연속 1위(2th~13th) 및 활발한 공연 활동을 놓고 보면 2015년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 등장한 것이 의외입니다. 이미 그녀들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일본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했으니까요.




노기자카46 공식 트위터 프로필의 첫 문장은 이렇게 소개됐습니다. "AKB48 공식 경쟁자로 결성한 아이돌 그룹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을 AKB48 라이벌 걸그룹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녀들이 결성했던 2011년에는 AKB48이 일본 최고의 걸그룹으로서 맹위를 떨쳤던 때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똑같지만요. 그만큼 AKB48 영향력이 일본에서 매우 막강합니다. 어떻게 보면 노기자카46이 연이은 고공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AKB48 존재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AKB48과 경쟁하는 걸그룹이면서도 실제로는 AKB48을 통해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면서 대중적인 관심과 성원을 받았으니까요.



흥미로운 것은 노기자카46과 AKB48을 결성시켰던 사람이 동일인물입니다.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에 의해 만들어졌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기자카46이 AKB48 공식 라이벌이 될 수 있었으며 이코마 리나와 마츠이 레나간의 교환 유학이 가능했습니다. 노기자카46의 이코마 리나는 2014년 4월부터 2015년 5월까지 AKB48 팀B 멤버를 겸임했으며 마츠이 레나(2015년 SKE48 졸업)는 AKB48 자매그룹인 SKE48 팀E 멤버였음에도 노기자카46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특히 이코마 리나는 2014년 AKB48 제6회 총선거(AKB48 37th 싱글 선발 총선거)에서 14위를 기록하며 당당히 선발 멤버에 진입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참고로 당시 총선거에서는 마츠이 레나가 5위에 올랐습니다.




노기자카46이 싱글 선발 멤버를 가리는 방식 또한 AKB48 총선거와 유사성이 짙습니다. 대략 200~300명 정도로 추정되는 AKB48 그룹 멤버들이 참여하는 총선거에 비하면 현재 멤버 규모가 크지 않으나 싱글 선발 멤버 변동이 잦습니다. 노기자카46 현재 멤버는 37명입니다. 그중에 싱글 선발에 포함되는 멤버는 16~17명입니다. 매 번 싱글이 발표될 때마다 싱글 선발 멤버 16~17명, 복신 멤버 및 센터 포지션을 맡을 인물을 가립니다. 얼마 전 진행된 14th 싱글 선발 멤버는 17명이 선정되었으며 13th 싱글에 비해 1명이 더 늘었습니다. 


노기자카46 14th 싱글 선발 멤버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발 3열 : 사쿠라이 레이카, 와카츠키 유미, 마츠무라 사유리, 이코마 리나, 이토 마리카, 이노우에 사유리, 호리 미오나

복신 2열 : 사이토 아스카, 타카야마 카즈미, 에토 미사, 아키모토 마나츠, 호시노 미나미

프론트 멤버(복신 1열) : 하시모토 나나미, 니시노 나나세, 후카가와 마이(센터), 시라이시 마이, 이쿠타 에리카




노기자카46은 2015년 10월 28일 발매했던 13th 싱글 '今、話したい誰かがいる(지금, 말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 앨범을 발매하며 사상 첫 70만 장 돌파를 이루었습니다. 2013년 50만 장 이상, 2014년 60만 장 이상, 2015년 7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예전보다 더욱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2016년 3월 23일에는 14th 싱글 발매를 할 예정이며 현재 센터인 후카가와 마이에게는 노기자카46 멤버로서 활동하는 마지막 싱글이 됩니다. 노기자카46 센터 및 복신 경쟁이 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마도 싱글 선발 결과에 따라 노지가카46 인기가 좌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AKB48 공식 라이벌 노기자카46의 롱런이 지속될지 앞으로가 주목됩니다.

일본 아이돌 NGT48, 새로운 AKB48 자매그룹 등장 의미는?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걸그룹은 AKB48입니다. 끊임없는 극장 공연을 통해 항상 대중들에게 다가가며 자신들의 친숙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AKB48의 성공은 일본 아이돌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습니다. 흔히 아이돌 하면 사람들이 TV 시청을 통해 접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나 AKB48은 그 방식을 바꿨습니다. 극장에서 직접 공연을 하며 대중들과 함께 호흡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AKB48 마니아를 확보했고, NGT48 같은 AKB48 자매그룹들이 탄생하며 다양한 장소에서 극장 공연을 펼쳤습니다. AKB48 멤버를 볼 수 있는 극장이 더욱 늘었습니다.




NGT48은 AKB48 자매그룹 중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했던 걸그룹입니다. AKB48이 도쿄 아키하바라, SKE48이 나고야 사카에, NMB48이 오사카 남바, HKT48이 후쿠오카 하카타(이상 일본), JKT48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SNH48이 중국 상하이에 있는 전용 극장에서 공연을 펼쳐왔다면 NGT48은 일본 니가타현에 소재한 니가타에서 활동합니다. 지난 1월 10일 자신들의 전용 극장을 오픈했는데 당시 첫 공연 신청했던 사람들의 경쟁률이 70.5:1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 것을 보면 NGT48 향한 일본 현지의 관심이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용 인원이 입석 포함 295명인 것을 감안해도 그녀들의 첫 공연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아직 NGT48 앨범이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AKB48 자매그룹이기 때문입니다. NGT48의 등장은 AKB48의 모든 팀과 자매그룹들을 하나로 일컫는 AKB48 그룹의 영향력 확장을 의미합니다. 현실적으로 AKB48내에 있는 모든 팀들이 일본 전역에서 극장 공연을 펼치기에는 스케줄이 빠듯합니다. 이렇다 보니 도쿄 아키하바라가 아닌 다른 지역의 극장에서 활동할 자매그룹을 두었고 니가타에는 NGT48이 등장했습니다. AKB48 그룹은 NGT48 같은 새로운 자매그룹의 탄생을 통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인기를 얻을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어쩌면 니가타현 출신의 NGT48 멤버가 AKB48 총선거를 통해 AKB48 그룹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을지 모를 '만약의 시나리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NGT48 멤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카시와기 유키(柏木由紀)입니다. AKB48 팀B와 NGT48을 겸임하며 그 이전에는 AKB48 팀B와 NMB48 활동을 함께 병행했습니다. 2015년 AKB48 제7회 총선거에서는 2위를 달성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2위는 지금까지 참여했던 7번의 총선거에서 가장 높은 순위입니다.(9-8-3-3-4-3-2위) 지난 5년 동안 AKB48 총선거에서 4위 이내에 포함되었던 경쟁력을 놓고 보면 언젠가 AKB48 총선거 1위를 달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AKB48 그룹에서 강력한 인기를 얻는 카시와기 유키의 존재감은 NGT48 인지도 향상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키타하라 리에(北原里英)는 NGT48의 인기 멤버입니다. 지금까지 AKB48 팀A, 팀B, 팀K 멤버로 활동했으며 한때는 SKE48 팀S 활동과 겸임했습니다. 이제는 NGT48로 이적했으며 2016년 1월 10일 NGT48 첫 공연을 통해 NGT48 팀NIII 캡틴으로 발탁됐습니다. 지금까지 7번의 AKB48 총선거에서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가 11위(2015년)입니다.(13-16-13-13-21-19-11위) 한때는 언더 걸즈(17~32위)로 밀렸으나 2015년을 통해 선발 멤버(1~16위)로 복귀하며 자신의 경쟁력을 되찾았습니다. NGT48 팀NIII의 중심 멤버로서 앞으로의 AKB48 총선거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갑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본 최고의 걸그룹 명성을 지켜왔던 AKB48의 브랜드 파워는 지금도 막강합니다. 일본 여성 아이돌 중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중이죠. AKB48 자매그룹 NGT48은 카시와기 유키, 키타하라 리에 같은 기존 AKB48 멤버 2명과 더불어 새로운 인물 14명, 연구생(연습생) 10명과 함께 니가타를 뜨겁게 빛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NGT48이 향후 어떤 활동을 할지 주목됩니다.



MAX, SPEED와 닮으면서 달랐던 관록의 일본 아이돌



지금까지 일본을 빛냈던 여성 아이돌 중에서 SPEED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90년대 중반과 후반을 빛냈던 일본 최정상급 여성 걸그룹이었죠. 그런데 그 시절에는 SPEED만 전성기를 보냈던 것이 아닙니다. SPEED처럼 오키나와 현 출신의 4인조 걸그룹이자 장르가 댄스였던 공통점이 있는 MAX 또한 그 시절을 화려하게 보냈습니다. 90년대 중반과 후반 오리콘 차트 1위 및 꾸준한 TOP 10 진입을 통해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SPEED와 MAX 인기는 2000년대에 이르러 하락세를 맞이했던 점, 지금도 현역 아이돌(SPEED는 ERIHIRO라는 유닛으로 활동 중)인 닮은 점까지 있습니다.





[사진 : 현재 3인조로 활동중인 MAX, 사진 출처 : MAX 공식 홈페이지(avex.jp/max)]

https://www.youtube.com/watch?v=IvT4pNB13hw


[동영상 : MAX 1997년 히트곡 <Give me a Shake> 뮤직비디오 (1분 44초 영상), 동영상 출처 : avex 공식 유튜브]



SPEED와 MAX는 닮으면서도 다른 점이 뚜렷한 걸그룹입니다. 어쩌면 음악을 듣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SPEED가 좋아? 아니면 MAX가 더 좋냐?'를 두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SPEED는 1996년 데뷔 당시 멤버 4인방 연령대가 10대 초~중반으로서 감미롭고 신나는 음악을 통해 소녀 이미지를 한껏 과시했습니다. 반면 MAX는 1995년 데뷔했을 때 멤버 4인방 연령대가 10대 후반에 속했습니다. 파워풀하면서 시원스러운 노래와 안무를 선보이며 마치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듯한 쾌감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SPEED와 MAX는 서로의 개성이 전혀 달랐습니다.


멤버들의 분업화 또한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SPEED는 시마부쿠로 히로코(솔로 활동 명 : hiro) 이마이 에리코에게 솔로 파트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MAX는 나나, 미나, 레이나, 리나 이렇게 4명이(전성기 시절 기준) 솔로 파트를 골고루 소화하며 노래를 부를 때 특정 멤버에 편중되는 경향을 피했습니다. SPEED에서 4명의 멤버가 마치 주연과 조연이 나누어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면 MAX는 4명이 서로 춤과 노래를 함께했습니다. SPEED는 히로코와 에리코 같은 노래를 잘하는 두 멤버를 통해서 소녀 감성을 자극했다면 MAX는 솔로 파트에서 4명을 골고루 활용하며 그녀들만의 박력 넘치는 음악적인 스타일을 끌어올렸습니다.






[사진 : MAX, 사진 출처 : MAX 공식 홈페이지(avex.jp/max)]

https://www.youtube.com/watch?v=DWDCWKFVoJI


[동영상 : MAX 2013년 싱글 <Tacata'> 뮤직비디오, 동영상 출처 : avex 공식 유튜브] 



MAX가 SPEED와 달랐던 또 하나는 지금까지 21년 동안 활동하면서 해체한 적이 없었습니다. SPPED가 2000년 해체했던(2008년 다시 재결합, 그 이전에 간헐적인 재결합이 있었습니다.) 경험이 있던 것과 달리 MAX는 데뷔 이후 줄곧 현역 아이돌이었습니다. 비록 레이나가 2011년 7월 이후 임신으로 활동을 중단하면서 멤버가 1명 줄었으나 2013년 싱글 33집 <Tacata'>가 지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3인 체제가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2002년 탈퇴했던 미나가 2008년 돌아왔던 것이 결과적으로 MAX가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나가 MAX를 떠났을 때는 새 멤버 아키가 6년 동안 활동했었죠.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등장했습니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아이돌 그룹이 많았겠으나 MAX처럼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활동했던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비록 MAX도 2002년 미나 탈퇴에 의해 인기가 시들해진 악재를 맞이했으나 지금까지 앨범 발매를 포기하지 않으며 롱런했습니다. 40대를 앞둔 지금의 MAX(1976년 3월 25일생 나나는 2개월 뒤 40세!)가 관록의 아이돌로서 끊임없이 장수할지 앞으로의 활약상이 기대됩니다.

스즈키 아미, 짧지만 화려했던 그녀의 전성기

<스즈키 아미, 짧지만 화려했던 그녀의 전성기>


가수들 중에서는 특정 시기에 반짝했다가 어느 순간에 몰락하며 더 이상의 전성기를 누리지 못했던 인물들이 있습니다. 일본 JPOP도 다르지 않습니다. 1998년 데뷔했던 스즈키 아미(鈴木あみ)의 지난날 가수 행보를 살펴보면 화려한 10대 시절을 보냈으나 그때를 이후로 자신의 본래 인기를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과 2000년에 일본에서 히트했던 노래를 즐겨들었던 사람들 중에는 스즈키 아미에 대한 달콤했던 추억을 간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당시 스즈키 아미는 일본의 대형 신인 여가수였습니다.





스즈키 아미는 일본 최정상급 프로듀서이자 혼성 3인조 밴드 Globe 리더 고무로 데츠야(小室哲哉)에 의해 발굴된 아이돌이었습니다. 1998년 2월 텔레비전 도쿄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ASAYAN' 보컬리스트 오디션 파이널에서 1위를 달성하며 가수 데뷔가 성사됐습니다. 그것도 고무로 데츠야의 음악적 지원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고무로 데츠야는 90년대에 수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여러 가수들을 성공시켰던(일명 TK 사단으로 불리는) 당시 일본 No.1 프로듀서였습니다. 그가 작곡한 곡을 받으며 가수 활동을 하는 것은 스즈키 아미 같은 신인에게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1998년 당시 16세였던 스즈키 아미가 ASAYAN 오디션에 응모하면서 1위를 달성했을 때의 지원자는 무려 약 1만 3,500명이었습니다. 스즈키 아미는 약 1만 3,500명 중에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는 실력이 가장 뛰어났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의 음악적인 메리트가 얼마나 높았는지 ASAYAN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TK 사단에 새롭게 합류했던 스즈키 아미는 1998년 7월 싱글 1집 <love the island>로 데뷔했으며 그 해 발매했던 싱글 4장 모두 오리콘 차트 5위권 안에 포함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싱글 2집 <alone in my room>을 통해 1998년 제40회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 제31회 일본 유선 대상 신인상, 제31회 전 일본 유선 방송 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일본 최고의 신인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이후 스즈키 아미의 인기는 거침없었습니다. 1999년 3월 25일 발매했던 정규 1집 <SA>가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던 것과 동시에 자신의 역대 최고 앨범 판매량(1,879,430장)을 기록했습니다. 그 해 7월 14일 선보였던 싱글 7집 <BE TOGETHER>도 오리콘 차트 1위에 뽑혔으며 자신의 역대 최고 싱글 앨범 판매량(869,860장)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9년에 <BE TOGETHER><OUR DAYS><HAPPY NEW MILLENNIUM>같은 '고무로 데츠야가 제작했던' 히트곡들을 남기며 90년대 마지막을 화려하게 빛냈습니다. 또한 2000년에는 <THANK YOU 4 EVERY DAY EVERY BODY> 같은 또 다른 히트곡을 남기며 1999년에 이어 2000년 NHK 홍백가합전에 모습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스즈키 아미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01년 당시 소속사였던 에지 커뮤니케이션을 떠나면서 가수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2000년 에지 커뮤니케이션 사장의 탈세 혐의가 제기된 것이 스즈키 아미 아버지가 딸의 계약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던 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스즈키 아미 아버지는 사장 탈세 혐의가 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봐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스즈키 아미는 이듬해 소속사와의 관계를 정리했고 한동안 가수 활동을 쉬었습니다. 이때가 19세 때의 일입니다.


그러더니 2005년 에이벡스 트랙스에 둥지를 틀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싱글 13집 <Delightful> 오리콘 차트 3위 및 제47회 TBC 일본레코드대상 금상 수상으로 과거의 인기를 되찾는 것 같았으나 연이은 앨범 판매량 부진에 겹치면서 전성기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일본에서 촉망받던 젊은 가수에게 전 소속사 문제는 커다란 악재가 됐습니다. 비록 그녀의 전성기는 짧았으나 10대 중반과 후반에는 일본의 대세녀로 각광받았습니다. 현재 DJ로 활동 중인 스즈키 아미는 음악과의 인연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가수보다는 새로운 분야 활동에 비중을 두는 모양새입니다.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그녀의 열정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기원합니다.

도쿄 아키하바라 디어스테이지에서 활동했던 흥미진진한 일본 대세 걸그룹 덴파구미.inc

<덴파구미.inc, 흥미진진한 일본 대세 걸그룹> 


현존하는 일본 최정상급 걸그룹 하면 AKB48, 모모이로 클로버 Z, 퍼퓸(Perfume)을 쉽게 떠올리게 됩니다. 세 걸그룹의 공통점은 지하 아이돌입니다. 극장이나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에서 가수 활동을 하며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과 동시에 고정팬 확보에 주력합니다. 인디즈 싱글 앨범을 발매한 뒤에는 메이저 싱글을 선보이며 많은 인기를 누렸던 성장 패턴이 두드러졌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덴파구미.inc(でんぱ組.inc)도 그중에 한 팀입니다. 도쿄 아키하바라에 소재한 '디어 스테이지'에서 성공적인 가수 활동의 꿈을 키우며 내실을 튼튼히 다졌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일본 대세 걸그룹으로 떠올랐습니다.





[사진 출처 : 덴파구미.inc 공식 홈페이지 (http://dempagumi.dearstage.com/)]


덴파구미.inc 도쿄 아키하바라에 소재한 '아키하바라 디어 스테이지'라는 라이브&바에서 활동했던 아이돌입니다. 2008년 후루카와 미린, 오와다 아카리(2010년 탈퇴) 2인조가 결성된 뒤 멤버 보강 및 교체를 거쳐 2011년 12월 25일에 이르러 지금의 6인조 체제가 완성됐습니다. 그때가 메이저 데뷔 2년차로서 그저 그런 행보를 나타냈으나 꾸준한 앨범 발매 및 공연 활동 끝에 2014년 3월 12일 발매했던 싱글 9집 <サクラあっぱれーしょん>이 오리콘 차트에서 처음으로 3위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승승장구를 거듭했습니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5년 9월 16일 발매했던 싱글 15집 <あした地球がこなごなになっても>는 오리콘 차트 2위를 기록했습니다.



[동영상 : 덴파구미.inc <サクラあっぱれーしょん> 뮤직비디오, 출처 : 덴파구미.inc 공식 유튜브]


지난 2년 사이에 비약적인 오름세를 나타냈던 덴파구미.inc 성공 이유는 자신들만의 뚜렷한 개성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섯 멤버 전원이 각자의 오타쿠 장르(게임,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등)가 있기 때문인지 특정 마니아 또는 일부 연령대에서 유별나게 좋아할 것만 같은 오타쿠 성향이 짙은 음악적 스타일을 나타냅니다. 밝은 느낌의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신나면서 발랄한, 때로는 정신이 없으면서 친숙함이 느껴지는, 그녀들의 음악을 계속 들어보면 멜로디가 점점 익숙해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그녀들의 개성이 뮤직비디오에서 최대한 발휘되었다면 라이브 공연에서는 재미있고 유쾌한 안무가 곁들여집니다.





[사진 출처 : 덴파구미.inc 공식 트위터 프로필 사진 (https://twitter.com/dempagumi)]


아마도 덴파구미.inc를 보며 모모이로 클로버 Z 콘셉트와 겹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 팀 모두 걸그룹의 전형적인 여신 이미지에서 탈피된 경향이 있습니다. 기발한 안무까지 선보이는 공통점까지 있죠. 하지만 덴파구미.inc와 모모이로 클로버 Z는 닮으면서도 다른 점이 뚜렷합니다. 모모이로 클로버 Z가 애니메이션 콘셉트에 철저한 이미지라면 덴파구미.inc는 화려하면서 관능적인 매력을 풍기는 의상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덴파구미.inc는 밝은 콘셉트에 최적화된 이미지로 승부수를 띄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동영상 : 덴파구미.inc <あした地球がこなごなになっても> 뮤직비디오, 출처 : 덴파구미.inc 공식 유튜브]


덴파구미.inc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그녀들의 흥미진진한 매력을 접하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녀들의 뮤직비디오 및 공연을 보며 일상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을 겁니다. 자신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업(UP) 시키는 덴파구미.inc가 2014~2015년에 이르러 일본 대세 걸그룹으로 떠올랐다면 2016년 이후의 행보는 어떨지 참으로 기대됩니다.

모모이로 클로버 Z, 다양한 매력 공존하는 일본 아이돌 걸그룹

<모모이로 클로버 Z, 다양한 매력 공존하는 걸그룹>


흔히 걸그룹 하면 발랄하면서 상큼한 이미지를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풋풋한 미모의 걸그룹 멤버들이 귀엽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그 동안 TV 및 인터넷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었죠.





하지만 일본 5인조 걸그룹 모모이로 클로버 Z(ももいろクローバーZ, MOMOIRO CLOVER Z) 콘셉트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걸그룹 이미지와 전혀 다릅니다. 다른 걸그룹들이 소화하기 힘들지 모를 독특한 의상과 기발한 안무로 무대 분위기를 장악하는 퍼포먼스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엽기적인 걸그룹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엽기적인 걸그룹 이미지로 인식하기에는 그녀들이 보유한 매력이 다양합니다. 온갖 형용사가 머릿속에서 떠올리기 쉬울 정도로 말입니다. 그것이 모모이로 클로버 Z가 높은 인기를 얻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lbrTlhX_Ww


[동영상 : 모모이로 클로버 Z <GOUNN> 뮤직비디오, 출처 : stardustdigital 유튜브 계정(모모이로 클로버 Z 소속사 스타더스트 프로모션(STARDUST Promotion) 공식 유튜브)]


모모이로 클로버 Z 멤버들의 콘셉트는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그녀들의 세련되고 화려한 무대 의상과 중독성 넘치는 멜로디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특히 의상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일본 학생들이 주로 착용하는 패션에서 세련되게 변형된 의상, 일본 및 다른 나라 전통 옷과 유사성이 짙은 의상, 멤버들의 개인별 색상(빨간색, 보라색, 녹색, 노란색, 분홍색)을 애니메이션 캐릭터 느낌이 드는 옷에 적용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때로는 난해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공연할 때가 있으나 오히려 다섯 멤버들의 이미지가 식상해지기 쉬운 단점에서 벗어나는 이점이 있습니다. 항상 같은 스타일의 의상만 고집할 수는 없으니까요.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는 전반적으로 임팩트 넘치는 노래들이 많은 인기를 얻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기세로 말입니다. 모모이로 클로버 Z는 강렬한 멜로디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다섯 멤버들이 민첩한 몸놀림과 난이도 높은 율동에 서로 똑같은 동작으로 호흡을 맞추는 춤 솜씨는 그녀들의 음악 표현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공연 때는 예측불허의 안무를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모모이로 클로버 Z 뮤직비디오 및 무대 공연 동영상을 접하면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현실 세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기분을 받기 쉽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YYhAryLnHY


[동영상 : 모모이로 클로버 Z <'『Z』の誓い> 뮤직비디오, 출처 : Momoiro Clover Z Channel 유튜브 계정(모모이로 클로버 Z 공식 유튜브)]


모모이로 클로버 Z가 가장 최근에 발표했던(2015년 4월 29일 앨범 발매) '『Z』の誓い(『Z』의 맹세)'라는 곡은 '드래곤볼 Z : 부활의 F' 주제가입니다. 다섯 멤버들이 해당 애니메이션에 특화된 의상을 착용하면서 실제 무술 동작을 자신들의 안무로 변형하여 춤추는 모습이 기발합니다. 어쩌면 모모이로 클로버 Z를 엽기적인 걸그룹으로만 인식했던 분이라면 『Z』の誓い 뮤직비디오를 보며 그녀들이 끼 많은 걸그룹임을 인지할지 모를 일입니다.


이러한 그녀들의 노력은 2012년부터 3년 연속 NHK 홍백가합전에 참가하는 영광으로 이어졌습니다. 인디즈에서 메이저 단계로 올라섰던, 일본 정상급 걸그룹으로 도약하기까지 철저하게 연습을 거듭하며 실력을 키우고 또 키우며 많은 고정 팬들을 확보했던 그녀들의 결실이 아름답게 맺어졌습니다. 비록 2015년 NHK 홍백가합전 출연이 성사되지 않았으나 모모이로 클로버 Z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홍백가합전 졸업'을 선언하며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만큼 모모이로 클로버 Z 좋아하는 팬층이 두꺼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츠우라 아야, 깜찍한 아야야 그때가 그립다


<마츠우라 아야, 깜찍한 아야야 그때가 그립다>


사람마다 아이돌 좋아하는 취향이 서로 다르겠지만, 귀엽고 깜찍한 일본 여성 아이돌 선호하는 관점에서는 마츠우라 아야(松浦亜弥)를 머릿속에서 떠올리기 쉽습니다. '아야야(あやや)'라는 애칭으로 일본 남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마츠우라 아야는 2000년대 초반과 중반에 일본에서 화려한 주목을 끌었던 솔로 여성 아이돌입니다. 그 시절에는 층쿠 프로듀서가 음악 제작했던 하로! 프로젝트(ハロー!プロジェクト, Hello! Project)에 포함된 여성 아이돌이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일본 최고 걸그룹이었던 모닝구무스메와 더불어 하로! 프로젝트 간판이었던 아이돌이 마츠우라 아야입니다.





마츠우라 아야는 모닝구무스메 멤버가 될 뻔했던 인물입니다. 2000년 모닝구무스메 오디션 합격을 통해서 가수 활동을 준비했으나 실제로는 2001년 4월 11일 'ドッキドキ! LOVEメール(두근두근! LOVE 메일)' 싱글 앨범 발매를 통해 솔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모닝구무스메 멤버로 활동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싶은 궁금증이 느껴지기 쉬우나 결과적으로는 그녀의 깜찍한 매력이 솔로 가수로서 빛을 발했습니다. 마츠우라 아야 전성기 시절의 뮤직비디오들을 살펴보면 자신만의 귀여운 미모와 소녀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애교를 과시했던 모습이 존재감에 남습니다. 마치 여동생 같은 느낌으로 말입니다. 


아야야의 귀여움은 무대에서도 빛났습니다. 밝은 분위기의 노래를 예쁘게 부르며 남자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으니까요. 노래를 부를 때 얼굴 표정과 손짓으로 애교를 표현하면서 곡의 분위기에 따른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퍼포먼스는 섬세하고 인간미가 넘칩니다. 다른 아이돌 가수와 차별화된 자신만의 소녀 매력이 돋보였던 인물입니다. 또한 그녀는 솔로 가수 활동을 기반으로 모닝구무스메 전현직 멤버들과의 다양한 유닛 활동, 드라마, 영화, 뮤지컬 출연에 이르기까지 노래와 연기에 걸쳐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히며 종횡무진 했습니다. 아이돌로서 다양한 재능을 겸비하면서 그 능력이 골고루 뛰어났던 하로!프로젝트의 에이스였습니다.






알고 보면 마츠우라 아야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입니다. 감정이 풍부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의 음정이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곡이 절정에 이를 때 고음을 내거나 화음을 넣는 기교를 발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록 20대가 되면서 자신의 인기가 내림세로 저물었음에도 가수 활동을 유지했던 것은 철저히 트레이닝된 가창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마츠우라 아야 가수 활동의 전반부가 아야야로서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면 후반부는 차분한 느낌의 발라드 앨범을 연이어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적인 콘셉트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거듭했습니다. 더 이상 소녀 이미지가 통하지 않으면서 가창력으로 승부수를 띄웠죠.


비록 마츠우라 아야는 과거의 전성기를 재현하지 못했으나 음악적인 열정이 대단했던 가수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노래를 부르든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던 그녀의 프로 기질이 지금까지 깊은 인상에 남습니다. 2007년부터 자궁내막증에 시달렸던(그녀가 자신의 질병을 밝힌 것은 2011년) 그녀의 음악 활동은 2013년 중단됐으나 언젠가 다시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봤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2016년이면 마츠우라 아야는 30대가 됩니다. 과거에 일본 남성 팬들에게 발랄한 이미지를 선사했던 깜찍한 10대 소녀 마츠우라 아야가 이제는 30세를 앞두고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합니다. 아야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