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키스, AKB48 유닛 활동 빛냈던 3인조 걸그룹

<프렌치 키스, AKB48 유닛 활동 빛냈던 3인조 걸그룹>


일본 최고 걸그룹 AKB48 내에서는 다양한 유닛 그룹들이 존재했습니다. 기존처럼 16명 또는 그 이상의 인원이 함께 무대에서 공연을 펼칠 때와 달리 소수 정예(?) 멤버로 유닛 활동을 하며 자신들의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인기 멤버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AKB48 그룹 내에서의 활동과 더불어 AKB48 싱글 선발을 통한 앨범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그중에는 다른 AKB48 그룹에 있는 멤버와 함께 유닛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난해까지 AKB48 유닛으로서 일본 팬들의 인기를 얻었던 3인조 걸그룹 프렌치 키스(フレンチ・キス, French Kiss)는 오리콘 1위 진입 및 콘서트 활동에 이르기까지 AKB48 유닛으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보냈습니다.




[사진 : 프렌치 키스, 사진 출처 : 프렌치 키스 공식 홈페이지 메인(avex.jp/french-kiss)]



[동영상 : 프렌치 키스 3rd 싱글 'カッコ悪い I love you!(꼴사납지만 I love you!)' 뮤직비디오, 동영상 출처 : avex 공식 유튜브]


프렌치 키스는 카시와기 유키(柏木 由紀) 쿠라모치 아스카(倉持 明日香) 타카죠 아키(高城 亜樹)로 구성된 3인조 걸그룹으로서 2010년 9월 8일에 첫 싱글 앨범(ずっと 前から, 오래전부터)을 발매했습니다. 당시 그녀들의 소속 그룹은 각각 AKB48 팀B, AKB48 팀A, AKB48 팀A였습니다. 팀A 멤버 2명과 팀B 멤버 1명이 프렌치 키스로 뭉치면서 유닛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이후 3명의 소속 그룹이 변경되거나 다른 AKB48 그룹 활동을 병행했음에도 프렌치 키스 유닛 활동을 2015년까지 이어갔습니다. 다른 AKB48 유닛 그룹도 마찬가지겠지만, 16명 이상의 멤버가 아닌 소수의 인원이 하나의 유닛이 된 것이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프렌치 키스는 멤버 구성원의 소속 그룹이 다르다는 점에서 과연 어떤 활약을 펼칠지 주목을 받았습니다.


3명의 유닛 활동은 성공했습니다. 1st 싱글 ずっと 前から이 오리콘 주간 5위에 안착했더니 그 이후 발매했던 5장의 싱글이 오리콘 주간 1~2위에 올랐습니다. 그중에 4th 싱글 '最初のメール(처음의 메일, 2011년 11월 22일 발매)'이 오리콘 주간 1위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프렌치 키스의 마지막 앨범이었던 1st 정규앨범 'French Kiss(2015년 10월 14일 발매)'도 오리콘 주간 1위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이들의 콘셉트와 음악적인 분위기가 AKB48과 비슷했음에도 오리콘 차트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나타낸 것은 AKB48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秋元 康)의 프로듀싱 및 작사가 활동이 프렌치 키스 앨범 히트의 토대가 됐습니다. 여러 여성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히트시켰던 아키모토 야스시의 안목이 프렌치 키스에서도 통했습니다.





[사진 : 카시와기 유키, 사진 출처 : 프렌치 키스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avex.jp/french-kiss)]



[동영상 : 프렌치 키스 3rd 싱글 수록곡에 포함된 '君なら大丈夫(너라면 괜찮아)' 뮤직비디오, 동영상 출처 : avex 공식 유튜브]


프렌치 키스가 많은 인기를 얻었던 원동력은 '유키링' 카시와기 유키가 센터로 활동하는 유닛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멤버 2명과 달리 카시와기 유키의 독보적인 인기가 빛났던 그룹이었죠. 그녀의 인기가 높다는 것은 AKB48 총선거에서 입증됐습니다. 2009년 1회 AKB48 총선거부터 지난해까지의 순위가 9-8-3-3-4-3-2위로서 AKB48의 거물급 멤버로 자리 잡았습니다. 프렌치 키스 활동 초기에는 AKB48에서 카미7(AKB48 총선거 상위 7명을 말합니다.)을 노렸던 입장이었으나 지난 5년 동안 2~4위를 유지했더니 지난해에는 개인 역대 최다 표(16만 7,183표)를 획득하며 첫 2위에 올랐던 것을 기뻐했습니다. 프렌치 키스 유닛 활동 병행이 그녀의 인기를 높이는데 어느 정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AKB48 유닛 프렌치 키스 인기는 카시와기 유키 팬덤의 긍정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녀를 좋아하는 일본 팬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렌치 키스를 주목하게 되었죠. 프렌치 키스 노래가 끊임없이 좋은 반응을 얻더니 오리콘에서 꾸준히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으며 센터 카시와기 유키의 인기 관리에 충분한 도움이 됐습니다. 아이돌 유닛 그룹이 성공하는데 있어서 핵심 멤버의 대중적인 존재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카시와기 유키와 프렌치 키스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프렌치 키스는 2015년 11월 5일 콘서트를 끝으로 해체됐습니다. 쿠라모치 아스카가 그 이전이었던 2015년 8월 AKB48을 졸업(탈퇴) 하면서 프렌치 키스가 존속할 명분이 사라졌습니다. 또 다른 멤버 타카죠 아키도 얼마 전 AKB48을 떠났습니다. 프렌치 키스 멤버 중에서는 카시와기 유키만 AKB48에 남게 되었죠. 더 이상 프렌치 키스가 활동을 볼 수 없게 되었으나 AKB48 유닛으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거둔 것은 분명합니다.

9nine, 11년째 롱런중인 일본 실력파 걸그룹

<9nine, 11년째 롱런중인 일본 실력파 걸그룹>


일본 걸그룹 9nine은 2006년 데뷔 이후 현재까지 11년째 활동 중인 5인조 걸그룹입니다. 본래 9명이었으나 다수의 기존 멤버들이 빠지고 새로운 멤버가 투입되면서 지금의 구성원 5명이 2010년 이후 현재까지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니시와키 사야카(西脇 彩華) 사타케 우키(佐武 宇綺)가 데뷔 연도부터 활동했다면 2007년에는 카와시마 우미카(川島 海荷)가 합류했고 2010년부터는 요시이 카나에(吉井 香奈恵) 무라타 히로나(村田 寛奈)가 정식 멤버로 가세했습니다. 이러한 멤버 변화를 놓고 보면 9nine이 우여 곡절을 겪으며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 9nine은 2016년 6월 22일 1st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사진 출처 : 9nine 공식 홈페이지 메인(9nine-web.net)]


9nine은 지금의 5명이 하나의 팀으로 완성되기 전까지 무명이었다면 지금은 오리콘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걸그룹으로 거듭났습니다. 언뜻 보면 이들이 성장형 아이돌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데뷔 이후 몇 년 동안은 고전을 면치 못했죠. 하지만 일본의 대표적인 성장형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AKB48 그룹과 과거의 모닝구무스메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Perfume, E-girls(및 그 계열에 있는 그룹들) 콘셉트와 비슷합니다. 무대에서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노래까지 잘 부르는 '실력파 걸그룹'입니다. 근래에는 노래 퀄리티까지 좋아지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동안 이들의 춤과 노래 실력에 비해 인기가 약했는데 이제는 그 약점이 해소되는 추세입니다.


이들은 싱글 14th 'With You/With Me(2014년 3월 12일 발매)', 싱글 19th '愛 愛 愛(사랑 사랑 사랑, 2016년 5월 3일 발매)' 오리콘 데일리 및 주간 4위를 통해 오리콘 차트 최고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2014년에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일본 도쿄 부도칸(武道館, 무도관) 공연을 통해 약 1만 명의 관객을 운집시키며 인기 걸그룹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과거에 선보였던 노래들이 대중적으로 히트하지 못했거나 잦은 멤버 교체를 겪었던 모진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들이 내세울 수 있는 실력적인 재능을 갈고닦으며 비로소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배우와 방송 출연 같은 개인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활동 영역을 확장한 인물(대표적으로 카와시마 우미카)도 있지만, 9nine이 지금까지 생존했던 것은 다섯 멤버들의 인내가 놀랍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6~2007년에 데뷔했던 3명이 더욱 그렇죠.


9nine이 무명에서 벗어났던 원동력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퍼포먼스가 뛰어난 실력적인 개성을 잘 유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이들이 단기적인 인기에 집착하는 걸그룹이었다면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풋풋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걸그룹으로 변화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귀여운 콘셉트는 어느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식상하게 느껴지기 쉬운 단점이 있습니다. 멤버가 많은 그룹이라면 나이 많은 멤버의 졸업이 불가피했을지 모를 일이죠. 이미 잦은 멤버 교체를 겪었던 9nine에게 그런 전략은 안 맞았습니다. 9nine 다섯 멤버들이 서로 호흡을 맞출수록 춤과 노래의 완성도를 높였던 것이 지금에 이르러 좋은 결실을 맺는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사진 : 카와시마 우미카, 사진 출처 : 레프로엔터테인먼트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lespros.co.jp)]


9nine에서 눈에 띄는 인물을 꼽으라면 카와시마 우미카입니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것과 더불어 CF 출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며 9nine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했습니다. 상큼한 미모를 과시하는 카와시마 우미카의 매력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9nine은 이제 카와시마 우미카와 작별해야 합니다. 카와시마 우미카가 2016년 7월 23일 공연을 끝으로 탈퇴합니다. 팀의 간판 멤버를 떠나보내는 9nine은 남은 4명의 멤버로 활동할 예정이며 2010년 이후 또다시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데뷔 이후 11년째 활동 중인 9nine의 롱런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여부와 더불어 카와시마 우미카 공백을 잘 메울지 추후 행보가 주목됩니다.

AKB48 총선거 2016, 사시하라 리노 '역대 최고'

<AKB48 총선거 2016, 사시하라 리노 '역대 최고'>


AKB48 총선거 2016 1위는 '삿시' 사시하라 리노(指原 莉乃, HKT48 팀H & HKT48 극장지배인)에게 돌아갔습니다. 지난 18일 일본 니가타에 있는 HARD OFF ECO 스타디움 니가타에서 진행된 AKB48 45th 싱글 선발 총선거 '僕たちは誰について行けばいい ?~'(우리들은 누구를 따라가야 좋을까?, 글의 편의상 AKB48 총선거 2016으로 표기)'가 펼쳐졌습니다. AKB48 팬들의 투표를 통해 45th 싱글 앨범의 선발 멤버(1~16위) 언더걸즈(17~32위) 넥스트걸즈(33~48위) 퓨처걸즈(49~64위) 업커밍걸즈(65~80위) 멤버를 가렸습니다. 그 결과 사시하라 리노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를 달성했습니다.





사진 : 사시하라 리노는 AKB48 총선거 2016을 끝낸 뒤 1위 기념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해당 사진의 메시지에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맛있는 레몬 사와(일종의 술을 말함) 마실 수 있습니다. 주간지의 여러분, 두드리면 먼지투성이의 나, 까부는 정도로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사진 출처 : 사시하라 리노 트위터(twitter.com/345__chan)]



사시하라 리노, 역대 최고의 'AKB48 멤버'


사시하라 리노의 AKB48 총선거 2016 1위 등극은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일이었습니다. 지난 1일 발표된 AKB48 총선거 2016 속보에서 와타나베 마유(渡邊 麻友, AKB48 팀B)의 42,034표(1위)보다 907표 부족했던 41,127표를 기록하며 2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13~2015년 총선거 속보 1위였던(BUT 2014년 최종 순위는 2위) 사시하라 리노의 AKB48 총선거 2016 속보 2위는 그녀의 2연패를 더욱 장담할 수 없었던 요인이 됐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속보 2위가 '엄청난 반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AKB48 총선거 2016에서 사시하라 리노에게 향했던 표가 '무려' 243,011표였습니다. AKB48 총선거 역사상 최다 득표를 획득한 것은 물론 2위 와타나베 마유의 175,613표보다 67,398표 더 많았습니다. 또한 그녀가 지난해 얻었던 194.049표보다 48,962표 증가했습니다. 이는 사시하라 리노의 올해 속보 2위가 그녀의 팬들을 결집시키며 몰표를 받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사시하라 리노도 이를 알았는지 1위 소감 때 "저의 팬들이 무리하게, 무리하게, 무리를 거듭한 1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진 : 사시하라 리노, 사진 출처 : HKT48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hkt48.jp)]



이로써 사시하라 리노는 2009년 초대 총선거와 2011년 1위였던 마에다 아츠코(前田 敦子, 졸업) 2010년과 2012년 1위였던 오오시마 유코(大島 優子, 졸업)가 이루지 못 했던 AKB48 총선거 2연패 및 통산 3회 1위를 달성했습니다. 여기에 총선거 최다 득표까지 포함하면 그녀가 역대 최고의 AKB48 멤버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됐습니다. 와타나베 마유조차 사시하라 리노의 인기에 대하여 '높은 벽'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니까요. 객관적으로 AKB48 최고의 인기 멤버가 사시하라 리노임이 증명됐습니다.


사시하라 리노 2연패 및 통산 3회 1위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외모와 노래, 춤 실력이 일본 최고 걸그룹 AKB48 1위 멤버에 걸맞은지 의문을 나타내기 쉽죠. 심지어 4년 전에는 어느 주간지에 의해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하지만 AKB48은 '会いに行けるアイドル(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걸그룹입니다. 활발한 극장 공연과 방송 출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예능에서 드러난 사시하라 리노의 친숙한 이미지를 좋아했던 일본인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사시하라 리노의 AKB48 총선거 득표 수 향상에 영향을 끼쳤고 더 나아가 위기에 빠진(와타나베 마유가 2위 소감에서 '위기'를 언급했을 정도!) AKB48의 몰락을 막아주는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현존하는 AKB48 최고의 멤버 사시하라 리노는 먼 훗날 최고의 아이돌을 꿈꾸는 일본의 어린 아이돌 유망주들에게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사진 : 카시와기 유키, 사진 출처 : AKB48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akb48.co.jp)]


카미7 달라진 변화, 카시와기 유키 추락


AKB48 총선거 2016 카미7(神7, 최고의 인기 멤버 7명)은 이렇습니다.(득표는 왼쪽이 2016년, 오른쪽이 2015년입니다.)


1위 사시하라 리노 : HKT48 팀H / 243,011표(+48,962표) / 2009년부터 27-19-9-4-1-2-1-1위

2위 와타나베 마유 : AKB48 팀B / 175,613표(+9,824표) / 2009년부터 4-5-5-2-3-1-3-2위

3위 마츠이 쥬리나 : SKE48 팀S / 112,341표(+7,052표) / 2009년부터 19-10-14-9-6-4-5-3위

4위 야마모토 사야카 : NMB48 팀N / 110,411표(+12,545표) / 2011년부터 28-18-14-6-6-4위

5위 카시와기 유키 : AKB48 팀B & NGT48 팀NIII 겸임 / 92,110표(-75,073표) / 2009년부터 9-8-3-3-4-3-2-5위)

6위 미야와키 사쿠라 : HKT48 팀KIV & AKB48 팀A 겸임 / 78,279표(-3,143표) / 2012년 이후 47-26-11-7-6위)

7위 스다 아카리 : SKE48 팀E / 69,159표(+25,494표) / 2010년부터 권외-36-29-16-10-18-7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카시와기 유키(柏木 由紀) 득표가 지난해보다 거의 절반이나 사라졌습니다. 지난해 총선거 2위로 선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 남자 아이돌 그룹 NEWS의 멤버 테고시 유야(手越 祐也)와의 스캔들이 그녀의 인기 하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속보 6위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최종 순위가 5위인 것이 다행일지 모르나 인기가 뚜렷하게 추락했다는 점에서 향후 많은 푸시를 받을지 알 수 없게 됐습니다. 반면 마츠이 쥬리나(松井 珠理奈)는 24세(곧 25세가 되는)의 카시와기 유키보다 5세 어린 19세라는 점에서 지금보다 높은 푸시를 받을지 모를 일입니다. 예를 들면 AKB48 향후의 싱글 앨범 공연 때 사람들에게 눈에 띄기 좋은 포지션에서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흐름으로 말입니다. 야마모토 사야카(山本 彩)는 6년째 캡틴으로 활동 중인 NMB48 영향력 향상을 위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분발할 것으로 보입니다.





[동영상 : AKB48 43th 싱글 '君はメロディー(너는 멜로디)' 뮤직 비디오. 이 노래는 지난 3월 9일 발매되었으며 이번 총선거 직전이었던 5월 31일에 AKB48 공식 유튜브를 통해 뮤직 비디오 풀 버전이 등장했습니다. 君はメロディー는 AKB48 10주년 기념 싱글로서 졸업 멤버 5인방(마에다 아츠코, 오오시마 유코, 이타노 토모미, 시노다 마리코, 다카하시 미나미)이 출연했습니다. 센터가 미야와키 사쿠라인 것은 AKB48 그룹의 미래를 빛낼 기대주라는 상징성이 큽니다. 동영상 출처 : AKB48 공식 유튜브]


올해 18세의 미야와키 사쿠라(宮脇 咲良)가 2년 연속 카미7을 지킨 것은 그녀의 인기가 거품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지난해보다 득표가 조금 떨어졌으나 매년 순위가 올랐다는 점에서 지금의 HKT48 에이스를 넘어 향후 AKB48 그룹의 에이스로 도약할 가능성이 여전히 무궁무진합니다. 특히 그녀가 6위 소감을 남겼을 때 5위 안에 들지 못했다며 무대 소감 때 울었던 것을 보면 최고의 AKB48 멤버가 되고 싶어 하는 승리욕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카미7에서는 스다 아카리(須田 亜香里)가 새롭게 포함된 것이 눈길을 끕니다. 지난해 18위에서 11계단 뛰어올랐습니다. 올해 나이 24세인 것을 놓고 보면 그동안 SKE48 멤버로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비로소 팬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사진 : AKB48 총선거 2016 선발 멤버 16인. 사진 출처 : AKB48 총선거 2016 공식 홈페이지(sousenkyo.akb48.co.jp)]


AKB48 선발 멤버 눈에 띄는 인물들, '냥냥가면' 코지마 하루나 졸업


AKB48 총선거 2016 선발 멤버 16명 중에서는 스다 아카리와 더불어 경이적인 순위 향상으로 주목 받은 인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9위 코다마 하루카(兒玉 遥, HKT48 팀H)는 2012년부터 권외-37-21-17위를 기록했더니 올해 총선거에서 60,591표를 얻으며 9위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거침없는 순위 향상이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다음 AKB48 총선거 2017에서는 카미7 중에 3명(사시하라 리노, 미야와키 사쿠라, 코다마 하루카)의 HKT48 멤버가 포함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10위 무토 토무(武藤 十夢, AKB48 팀K, 58,624표)의 순위도 많이 올랐습니다. 2011년부터 불참가-49-45-24-16위에 이어 10위를 기록했습니다. 지금의 오름세라면 내년 총선거에서 코다마 하루카 등과 함께 카미7 진입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입니다.


이번 총선거 13~15위를 기록했던 무카이치 미온(向井地 美音, AKB48 팀K, 47,094표) 오카다 나나(岡田 奈々, AKB48 팀4, 43,318표) 다카하시 쥬리(高橋 朱里, AKB48 팀4, 40,648표)의 순위는 지난해보다 각각 31계단, 15계단, 10계단이나 올랐습니다. 3명의 연령대가 1997~1998년이라는 점에서 미야와키 사쿠라 등과 더불어 향후 AKB48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무카이치 미온은 AKB48 44th 싱글 ' 翼はいらない(날개는 필요없어)' 센터를 맡았던 것이 자신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AKB48 총선거 2016에서는 생년월일 2222년 2월 22일 및 네오 아키하바라 출신으로 설정된 냥냥가면( にゃんにゃん仮面) 정체가 예상대로 코지마 하루나(小嶋 陽菜, AKB48 팀A)로 밝혀졌습니다. 그녀는 이번 총선거에서 40,071표로 16위를 기록했으나 코지마 하루나라는 이름으로 참가했던 시절(2009년부터 6-7-6-7-9-8-불참가)에 비해 순위가 많이 낮아졌습니다. 코지마 하루나는 무대에서 AKB48 졸업을 선언했으나 만약 냥냥가면이 기획되지 않았다면 지난해 다카하시 미나미 4위 등극처럼 더 높은 순위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컸다는 점에서 아쉬움에 남습니다.




[사진 : 와타나베 마유, 사진 출처 : AKB48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akb48.co.jp)]


AKB48 위기론, 45th 싱글에서 끝낼까?


와타나베 마유는 2위 소감 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AKB48은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선배가 졸업하고 있어 지금 있는 멤버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선배분들이 만들어 주신 AKB48을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AKB48 그룹이 일본 여론에서 제기된 위기론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와타나베 마유의 공개적인 발언은 총선거에 참가했던 AKB48 그룹 멤버들의 각성을 일깨웠습니다. 그와 더불어 AKB48 총선거 2016을 관람했던 수만 명의 팬들과 TV 생중계로 시청했던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AKB48이 앞으로 열심히 할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메시지를 심어줬습니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오는 8월 31일 발매 예정인 AKB48 45th 싱글입니다. 이미 팬들의 투표에 의해 새로운 선발 멤버 및 사시하라 리노를 센터로 뽑았다면 과연 45th 싱글이 크게 히트할지 여부가 주목됩니다. AKB48 명곡으로 꼽히는 17th 싱글 'ヘビーローテーション(헤비로테이션, 센터 : 오오시마 유코)', 32th 싱글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사랑하는 포춘 쿠키, 센터 : 사시하라 리노)'가 각각 2010년과 2013년 총선거 이후에 나왔던 싱글이라는 점에서 이번 45th 싱글의 인기 여부에 따라 AKB48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과연 AKB48 위기론이 45th 싱글에서 끝날지 아니면 계속될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La PomPon, ZARD 히트곡 리메이크로 주목받다

<La PomPon, ZARD 히트곡 리메이크로 주목받다>


일본 밴드 ZARD의 보컬 사카이 이즈미(坂井泉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맘때쯤에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던 때를 기억할 것입니다. 2007년 5월 27일은 사카이 이즈미가 뇌진탕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던 날이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던 가수이자 작사가 사카이 이즈미 사망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그녀를 좋아했던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ZARD 노래를 접하면서 JPOP을 좋아하게 되었거나 지금도 ZARD 노래를 즐겨듣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을 전설적인 여가수입니다.





[사진 : La PomPon, 사진 출처 : La PomPon 공식 홈페이지 메인(lapompon.com)]




[동영상 : La PomPon 4th 싱글 '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 뮤직비디오(Short Ver.), 동영상 출처 : La Pompon 공식 유튜브(La Pompon Channel)]


ZARD의 소속 레코드 회사는 Being입니다. Being은 1978년 설립 이후 수많은 아티스트의 음악을 제작했으며 2015년에는 La PomPon이라는 6인조 걸그룹을 데뷔시켰습니다. La PomPon이라는 그룹명은 "Power Of Music", "Pride Of New generation"의 단어가 합쳐졌습니다. 멤버 전원이 10대로 구성된 댄스 장르의 걸그룹으로서 현재 평균 연령이 16세입니다. 데뷔 이전이었던 2014년에는 TOKYO IDOL FESTIVAL 2014에 출연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2015년에는 3장의 싱글을 발매했으며 2016년 3월 23일에는 4th 싱글 '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サヨナラは始まりの言葉(운명의 룰렛을 돌려줘/잘 가라는 말은 시작의 말)'을 선보였습니다.


그중에 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는 ZARD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노래입니다. 원곡은 1998년 9월 17일 ZARD 25th 싱글 앨범으로 발매되었으며 사카이 이즈미가 작사를 맡았습니다. 이 노래는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4기 오프닝 곡이며 ZARD 싱글 앨범으로 나오면서 오리콘 주간 1위에 등극했습니다. ZARD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이 들어봤을 노래입니다. 사카이 이즈미의 감성과 호소력 넘치는 보이스와 강렬한 락 사운드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서 사랑의 희망과 좋은 행운을 느낄 것만 같은 노래 가사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의 ZARD 노래들이 여럿 히트했었죠.


La PomPon이 리메이크했던 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는 2016년 3월 23일 발매됐습니다. 지난 1월 9일부터 명탐정 코난 50기 엔딩 곡으로 방영되었으며 추후 La PomPon 싱글 앨범으로 선보이면서 오리콘 주간 12위까지 올랐습니다. 이전 싱글 앨범이 오리콘 주간 8위까지 올랐던 것에 비하면 순위가 떨어졌으나 이 노래를 통해서 La PomPon이라는 신예 걸그룹을 사람들에게 더욱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ZARD 앨범이 지금도 발매될 정도로 ZARD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La PomPon 인지도 향상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진 : La PomPon, 사진 출처 : La PomPon 공식 블로그 메인(ameblo.jp/lapompon)]


6인조 걸그룹 La PomPon이 불렀던 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는 원곡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6명의 평균 나이가 16세라서 그런지 전형적인 10대 소녀 특유의 싱싱한 감성이 묻어났습니다. 멤버들이 함께 노래를 불렀던 파트가 많기 때문에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어도 '아이돌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사카이 이즈미가 불렀던 원곡의 느낌과 차이점이 뚜렷합니다. 그럼에도 ZARD 노래가 다른 일본 가수에 의해서 '이렇게 재해석 될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0대 걸그룹의 개성 넘치는 매력이 돋보였습니다.


La PomPon은 3rd 싱글 앨범 '謎/ヤダ!嫌だ!ヤダ! 〜Sweet Teens ver.〜' (수수께끼 / 싫어! 싫다고! 싫어! ~ 달콤한 10대들 버전~)를 통해 오리콘 주간 8위에 올랐습니다. 앨범 수록 곡이었던 謎(수수께끼)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코마츠 미호의 노래를 리메이크했으며 명탐정 코난 41기 오프닝을 통해 선보였습니다. 그 이후 ZARD 히트곡 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를 리메이크했던 La PomPon이 앞으로 어떤 노래를 선보이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일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케야키자카46, 2016년 초특급 신인 걸그룹 등장

<케야키자카46, 2016년 초특급 신인 걸그룹 등장>


케야키자카46(欅坂46)은 일본 JPOP의 떠오르는 신인 걸그룹입니다. 지난 4월 6일 발매했던 1st 싱글 <サイレントマジョリティー(사일런트 매져리티)>라는 앨범이 오리콘 차트 데일리 및 주간 1위, iTunes Store 데일리 및 주간 1위 등을 휩쓸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과시했습니다. 앨범 첫날 판매량 191,203장, 초동 판매량(앨범 발매 후 첫 번째 주 판매량) 261,580장을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 여성 아티스트 데뷔 싱글 초동 판매량 역대 최고 기록입니다. 기존에 기록을 보유했던 AKB48 자매그룹 HKT48을 뛰어넘었습니다. 케야키자카46이 일본의 초특급 신인 걸그룹으로 거듭났음을 상징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사진 : 케야키자카46, 사진 출처 : 케야키자카46 공식 홈페이지 메인(keyakizaka46.com)]


20인조 걸그룹 케야키자카46은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앨범 발매한지 첫 주만에 26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것은 지난 3월 중순에 공개된 'サイレントマジョリティー' 뮤직비디오 및 라이브 공연의 영향이 큽니다. 제복을 입은 20명의 소녀들이 무대에서 연출했던 군무가 마치 로봇이 춤을 추듯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노래 가사 중에서 일본 청소년들의 마음을 이끌리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을 보면 이 노래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힘이 강했습니다. 그녀들의 단합된 안무, 호소력 넘치는 가사 및 멜로디, 신인 걸그룹이라는 참신함은 일본인들에게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결과는 많은 앨범 판매량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직은 케야키자카46이 싱글 앨범 1장만 발매했기 때문에 향후 어떤 콘셉트로 활동하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サイレントマジョリティー'라는 데뷔곡을 통해서 일본인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긴 것은 분명합니다. 그 노래가 히트하는데 있어서 아키모토 야스시(秋元 康) 영향력이 강했습니다. 그는 'サイレントマジョリティ'의 작사 및 프로듀서를 맡았습니다. AKB48 그룹과 노기자카46(乃木坂46)을 일본 정상급 아이돌로 키웠던 프로듀서이자 작사가로서 이제는 케야키자카46을 발굴했습니다. 일본의 유명 프로듀서이자 방송계에서 잔뼈가 굵은 야키모토 야스시의 존재감이 막강하다는 점에서 케야키자카46의 인기가 더욱 높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 충분합니다.





[사진 : 히라테 유리나, 사진 출처 : 케야키자카46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keyakizaka46.com)]


케야키자카46에서 주목받는 인물은 'サイレントマジョリティー'에서 센터를 맡은 히라테 유리나(平手 友梨奈)입니다. 올해 14세이자 케야키자카46의 막내임에도 케야키자카46 첫 번째 싱글에서 센터로 활약했습니다. '팀 내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멤버가 왜 센터일까?'라는 의구심이 그녀의 귀엽고 깜찍한 외모와 160.2cm의 키를 통해 충분히 납득됩니다. 특히 'サイレントマジョリティー' 안무는 철저하게 히라테 유리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합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그녀의 춤과 노래, 눈빛이 유난히 눈에 띕니다. 이는 케야키자카46이 높은 인기를 누리기 위한 일종의 전략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인물로 통할 수 있는 멤버를 센터에 배치했습니다. 그 멤버는 히라테 유리나였고 그녀의 케야키자카46 센터 배치는 옳았습니다.


히라테 유리나는 2001년 6월 25일생으로서 앞으로 1달 뒤면 15세가 됩니다. 인기 걸그룹 주요 멤버가 주로 20대 이후에 졸업(탈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히라테 유리나는 케야키자카46이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누린다는 전제에서 향후 몇 년 동안 팀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케야키자카46은 히라테 유리나 효과를 통해서 한동안 높은 인기를 누릴 명분을 얻게 됩니다. 다만, 케야키자카46이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얻으려면 히라테 유리나 이후의 인기 멤버를 발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추후 싱글이 발매되면서 해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케야키자카46이 데뷔 싱글을 발매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이들이 높은 인기를 얻을지 아니면 반짝에 그칠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데뷔 싱글 앨범이 기록적인 판매량을 나타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 이후의 싱글 앨범 및 방송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작용합니다. 과연 케야키자카46이 일본 정상급 걸그룹으로 성장하는 날이 올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Flower, 감미로운 발라드와 우아한 춤의 조화

<Flower, 감미로운 발라드와 우아한 춤의 조화>


일본 아이돌 E-girls는 Dream, Happiness, Flower라는 걸그룹 세 팀과 일부 인물이 함께 한 팀으로 활동하는 20인조 걸그룹입니다. 유명 걸그룹 세 팀이 한 팀이 되면서 고정적으로 활동하며 NHK 홍백가합전 출장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는 현상은 한국인에게 낯설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한국에서 이러한 유형의 걸그룹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E-girls 내에 있는 Flower 노래 및 라이브 공연을 접하면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취향이 두드러집니다. 뛰어난 가창력과 노래에서 전달되는 깊은 감성,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멜로디, 단합된 안무에 이르기까지 그녀들만의 개성이 더욱 확고하게 나타납니다. Flower는 그동안 좋은 노래를 여럿 선보였던 실력파 걸그룹입니다.





[사진 : Flower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서는 12th 싱글 'やさしさで溢れるように(상냥함이 넘쳐나도록)' 6월 1일 발매를 예고했습니다. 사진 출처 : Flower 공식 홈페이지 메인(flower-ldh.jp)]



[동영상 : Flower 11th 싱글 '瞳の奥の銀河' 뮤직비디오, 동영상 출처 : Flower Official YouTube Channel]


6인조 걸그룹 Flower는 보컬이 1명(와시오 레이나)이며 나머지 다섯 명이 춤에 전념하는 퍼포머입니다. 와시오 레이나도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는 다른 멤버들과 함께 춤을 추며 퍼포머 역할을 병행합니다. 가장 최근에 발매했던 11th 싱글 '瞳の奥の銀河(눈동자 속의 은하)'에서는 와시오 레이나만 노래를 불렀습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와시오 레이나를 포함한 6명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라이브 공연에서는 그녀가 노래에 많은 비중을 두면서 다른 다섯 명이 춤을 추며 노래의 분위기를 띄웁니다. E-girls도 보컬과 퍼포머의 영역이 뚜렷합니다만, Flower는 보컬이 3명에서 1명으로 줄어들면서(본래 9인조 멤버로 가수 활동) 와시오 레이나 노래에 주목하기 쉽습니다. 그녀의 가창력이 Flower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 이유는 Flower의 주 장르가 발라드이기 때문입니다. 발라드는 가수의 가창력이 중요한 장르입니다. 가수가 발라드를 잘 부르면 사람들의 좋은 호응을 얻어낼 수 있죠. 瞳の奥の銀河도 발라드입니다. 이 노래가 오리콘 차트 데일리 1위 및 주간 2위를 달성하며 히트했던 배경 중에 하나가 와시오 레이나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와 안정된 창법이었습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다섯 멤버와의 짜임새 높은 안무와 어우러지면서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호소력 있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노래의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Flower 멤버들이 일본 아이돌 가수로서 노래와 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瞳の奥の銀河을 통해 알 수 있었으며 이전 노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진 : Flower 멤버 6명. 사진 왼쪽부터 나카지마 미오, 후지이 슈카, 와시오 레이나, 사토 하루미, 시게토메 마나미, 반도 노조미 순서입니다. 사진 출처 : Flower 공식 홈페이지(flower-ldh.jp)]




[동영상 : Flower 5th 싱글 '太陽と向日葵' 뮤직비디오, 동영상 출처 : Flower Official YouTube Channel]


Flower 노래 중에서는 瞳の奥の銀河외에도 5th 싱글 '太陽と向日葵(태양과 해바라기)', 6th 싱글 '白雪姫(백설공주)', 10th 싱글 'Blue Sky Blue' 등의 노래는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발라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 노래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언어만 다를 뿐 마치 한국 노래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평소에 듣기 좋은 노래들이 여럿 있습니다. 퍼포머들의 여성적인 안무와 구성력이 돋보이는 안무와 함께 눈여겨볼 만합니다. 아이돌을 포함한 가수의 음악적 실력을 중시하는 한국인 취향에 맞는 일본 걸그룹이 아닌가 싶습니다. Flower 멤버들이 속해있는 E-girls 또한 실력이 뛰어난 걸그룹이죠.


흥미로운 점은 Flower와 E-girls의 음악적인 콘셉트가 서로 대조적입니다. Flower의 주 장르가 발라드라면 E-girls는 댄스입니다. Flower 멤버들이 E-girls 멤버로 활동할 때는 댄스 가수가 됩니다. Flower는 와시오 레이나의 스위트한 목소리와 퍼포머들의 우아한 몸짓에 의한 감성적인 느낌이 짙게 표현됩니다. 반면 E-girls는 발랄한 보이스와 고난이도의 안무가 서로 어우러지며 노래 분위기를 화끈하게 끌어올리는 기질이 넘쳐납니다. 이렇게 서로의 차별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Flower와 E-girls는 음악적으로 볼 거리가 충분한 걸그룹입니다.

후지모토 미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돌 스타

<후지모토 미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돌 스타>


후지모토 미키(藤本美貴)가 가수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2002~2007년에는 그녀가 속했던 하로 프로젝트(Hello! Project, ハロー!プロジェクト)가 최전성기를 보냈던 때였습니다. 그 시절에 모닝구무스메(지금의 모닝구무스메 '16)와 마츠우라 아야의 인기가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구었죠. 이들과 더불어 후지모토 미키도 하로 프로젝트를 빛냈던 아이돌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솔로 및 모닝구무스메, 고맛토(하로 프로젝트의 유닛 그룹) 활동 등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풍미하며 일본 남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녀의 팬들이 집단적으로 극성스러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은 그 시절의 하로 프로젝트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얼핏 기억에 남을 겁니다.




[사진 : 후지모토 미키 공식 블로그 메인, 사진 출처 : ameblo.jp/miki-fujimoto]


'미키사마', '미키티' 애칭으로 불렸던 후지모토 미키는 2003년 모닝구무스메 6기 멤버로 영입된 가수였습니다.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다수의 모닝구무스메 멤버와 달리 솔로 가수로서 성공적인 활동을 펼치던 도중에 모닝구무스메 멤버가 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녀가 일본 가요계에 데뷔했던 2002년에는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했을 정도로 솔로 가수로서의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여자 솔로 신인 가수가 데뷔년도에 NHK 홍백가합전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은 흔치 않습니다. 당시 그녀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후지모토 미키가 NHK 홍백가합전에서 선보였던 노래는 3th 싱글 'ロマンティック浮かれモード(로맨틱 들뜬 모드)'였습니다. 1절 끝난 뒤 요시자와 히토미, 카고 아이, 츠지 노조미 포함한 모닝구무스메 멤버 8명이 그녀 곁에서 춤을 추며 백댄서 역할했던 것이 지금도 인상 깊게 기억납니다. 그녀가 하로 프로젝트의 일원임을 많은 일본인들에게 드러냈던 순간입니다. ロマンティック浮かれモード는 후지모토 미키의 대표곡으로 통합니다. 이 노래를 통해 개인 통산 오리콘 차트 최고 순위(3위) 및 NHK 홍백가합전 출장의 영광을 만끽할 수 있었죠. 한 음 한 음 놓치지 않는 그녀의 정확한 발음과 화끈한 가창력이 프로듀서 층쿠(つんく♂) 특유의 밝은 노래 분위기와 어우러지며 사람들에게 시원한 느낌을 선사한 것은 물론 중독성이 강했습니다.




[사진 : 후지모토 미키 공식 블로그 메인, 사진 출처 : ameblo.jp/miki-fujimoto]


2002년을 화려하게 빛냈던 후지모토 미키는 2003년 1월 모닝구무스메 멤버가 됐습니다. 과거 모닝구무스메 오디션 낙방했던 그녀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솔로 가수로서 잘 나갔던 시점에 모닝구무스메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던 것이 의외입니다. 주요 멤버의 졸업(탈퇴) 공백을 메워야 했던 모닝구무스메로서는 후지모토 미키 합류에 의해 가수로서의 실력적인 역량을 보강했습니다. 후지모토 미키는 모닝구무스메 멤버로서 착실한 활약을 펼친 끝에 2005년 서브 리더, 2007년 리더로 발탁됐습니다. 이는 그녀의 음악적인 역량이 모닝구무스메 내에서 좋게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로 프로젝트 내에서 다양한 유닛 활동을 펼치며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 시절의 후지모토 인기는 일본 정상급 아이돌 스타로서 손색없었습니다.


후지모토 미키가 많은 인기를 얻었던 또 다른 원동력은 몸매입니다. 후지모토 미키 몸매 비율 좋은 일본 여자 가수로 회자됩니다. 얼굴 크기가 작다 보니 몸매 비율이 돋보이는 효과가 연출됩니다. 한국 걸그룹 AOA 설현 향한 인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이유 중에 하나가 8등신 몸매 비율이었던 것을 보면 후지모토 미키가 아름다운 매력이 있는 아이돌 가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성기 시절 앞머리 눈썹 크기의 단발머리 때문에 그녀의 예쁜 모습이 가려지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만, 오히려 그 시절에는 그녀의 노래 스타일 때문인지 씩씩한 느낌이 묻어났습니다. 머리 길이가 점점 길어지면서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가 돋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연기 병행까지 했던 그녀의 다재다능함을 보면 아이돌 가수로서 장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후지모토 미키에게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모닝구무스메 리더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07년 5월 한 주간지에서 개그맨 쇼지 토모하루와 같이 찍힌 사진이 공개되면서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그 사진이 문제가 되자 2007년 6월 1일 모닝구무스메를 탈퇴했습니다. 역대 모닝구무스메 최단기간 리더(25일)가 되고 말았죠. 한동안 연예계 활동을 쉬었던 그녀는 2008년 자신의 6th 싱글 '置き手紙(두고간 편지)'을 발매하며 엔카를 부르는 변신을 시도했으나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싱글 앨범이 됐습니다. 이듬해 쇼지 토모하루와 결혼했던 그녀는 활발한 방송 활동을 이어가며 연예인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현재는 두 자녀의 엄마로서 가정생활에 충실한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시하라 리노, AKB48 최고의 인기 스타

<사시하라 리노, AKB48 최고의 인기 스타>


'일본 최고의 걸그룹' AKB48 그룹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인물은 HKT48 팀H 소속의 사시하라 리노(指原莉乃)입니다. 2013년과 2015년 AKB48 총선거 1위를 달성하며 AKB48 및 자매 그룹을 포함한 모든 멤버 중에서 대중들의 높은 관심과 성원을 받는 가수임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2007년 AKB48 연구생(연습생, AKB48 5기) 활동을 통해 밑바닥부터 시작했더니 6년 뒤인 2013년 AKB48 총선거 1위를 달성하며 입지전적의 인물로 거듭났습니다. 2015년에는 2년 만에 1위를 되찾으며 AKB48 최고의 멤버임을 증명했습니다. 4년 전 AKB48 활동의 중대 위기를 겪었으나 그것이 전화위복이 된 그녀만의 특별한 매력을 살펴볼까 합니다.




[사진 : 사시하라 리노, 사진 출처 : HKT48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hkt48.jp)]


사시하라 리노의 역대 AKB48 총선거 순위는 27-19-9-4-1-2-1위였습니다. 2015년 AKB48 총선거에서 1위 경쟁을 펼쳤던 와타나베 마유(4-5-5-2-3-1-3위, AKB48 팀B) 카시와기 유키(9-8-3-3-4-3-2위, AKB48 팀B & NGT48 팀NIII)와 달리 7년 동안 순위 편차가 컸습니다. 이는 사시하라 리노가 AKB48 그룹의 일원이 되었던 초창기(2010년까지 AKB48 팀B 멤버, 2012년 6월까지 AKB48 팀A 멤버)에 인기가 높았던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노래와 춤 실력이 뛰어나거나 우월한 비주얼 미모를 과시하는 이미지와는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AKB48 그룹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되기까지 그녀만의 끊임없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 돌파구는 예능이었습니다. 사시하라 리노 예능감은 '헤타레(へたれ)'라는 키워드로 요약됩니다. 뭔가 서툴면서, 겁이 많은, 잘 우는 자신의 성향이 헤타레 캐릭터와 잘 맞았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인물이 AKB48 팬이 아닌 사람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오히려 일본인들은 그녀에게 친근감을 느꼈습니다. 사시하라 리노 특유의 개그우먼 뺨치는 예측 불가능한 개그 감각과 재미난 입담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빛을 발하면서 사람들을 빵 터지게 했습니다. 평범하면서 재치 넘치는 그녀의 매력은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모토로 대중들에게 친밀히 다가가는 AKB48의 철학과 잘 어울렸습니다. AKB48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사시하라 리노가 적잖은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스캔들 시련을 겪었습니다. 2012년 6월 한 주간지에서는 사시하라 리노와 과거에 사귀었다고 밝혔던 남자와 관련된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이에 사시하라 리노는 그 남자와 친구 관계였던 것을 인정하며 AKB48 멤버로서 연애 금지령을 어겼습니다. 일부 AKB48 그룹 멤버가 연애 금지령 어기면서 퇴출 처분을 받았던 것과 달리 사시하라 리노는 당시 신생 아이돌이자 후쿠오카에서 활동하는 HKT48로 이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녀에게는 커다란 행운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HKT48 주요 멤버 포함한 5인방이 그 해 8월에 집단적으로 탈퇴하면서 사시하라 리노를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습니다. 또한 사시하라 리노 스캔들이 차츰 수습이 되면서 그녀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더욱 늘었습니다.




[사진 : 사시하라 리노, 사진 출처 : 오오타 프로덕션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ohtapro.co.jp)]



[동영상 : AKB48 32th 싱글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사랑하는 포춘 쿠키)'에서는 사시하라 리노가 센터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동영상 출처 : AKB48 공식 유튜브]


2013년 6월 AKB48 총선거에서는 사시하라 리노가 1위를 달성하는 충격적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1년 전 스캔들 사건에 휩싸였던 것이 오히려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이와 함께 사시하라 리노의 2nd 싱글(2012년 10월 발매) 오리콘 차트 주간 및 데일리 1위, HKT48의 1st 싱글(2013년 3월 발매)이 오리콘 차트 주간 및 데일리 1위, 2013년 4월 사시하라 리노 HKT48 극장 지배인 임명에 이르기까지 그녀와 HKT48 향한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사시하라 리노가 AKB48의 자매그룹 멤버로서 최초로 AKB48 총선거 1위를 달성했던 밑바탕이 됐습니다. 그 해 8월에 발매된 AKB48 32th 싱글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사랑하는 포춘 쿠키)'에서는 AKB48 멤버로서 사상 처음으로 센터에 배치되었으며 그 노래는 엄청난 히트를 쳤습니다. 지금도 AKB48의 명곡으로 회자되는 편이죠. 그녀가 사람들에게 많은 주목을 끌게 됐습니다.


사시하라 리노는 2014년 AKB48 총선거에서 2위로 내려앉았으나 이듬해 1위를 되찾으며 자신의 인기가 AKB48 No.1임을 각인시켰습니다. 특히 총선거 정견 영상을 통해 1위 달성 시 수영복(비키니)을 입고 라이브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결국 이행했던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비키니를 입고 춤추면서 노래를 불렀던 사시하라 리노의 파격적인 모습과 더불어 그녀의 몸매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됐습니다. 현재 HKT48 극장 지배인이자 멤버로 활동 중인, AKB48 싱글 앨범에 지속적으로 선발되는 중인 사시하라 리노의 인기는 지금도 건재합니다.

팀 샤치호코, 발랄한 개성 돋보이는 아이돌

<팀 샤치호코, 발랄한 개성 돋보이는 아이돌>

팀 샤치호코(チームしゃちほこ)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일본 여성 아이돌입니다. 일본의 대형 연예 기획사 스타더스트 프로모션 예능 3부 주니어 부문에 소속된 걸그룹으로서 모모이로 클로버 Z, 시리쓰에비스추가쿠(사립에비스중학)의 자매 그룹입니다. 멤버들의 연령대가 17~18세로서 밝고 명랑한 소녀 이미지를 널리 과시할 시기에 도달했으며 그녀들의 음반이 오리콘 차트 상위권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놓고 보면 향후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누릴 잠재력이 충분합니다.




[사진 : 팀 샤치호코, 사진 출처 : 팀 샤치호코 공식 홈페이지 메인(team-syachihoko.jp)]



[동영상 : 팀 샤치호코 9th 싱글 'Cherie!' 뮤직비디오, 동영상 출처 : 팀 샤치호코 공식 유튜브]


팀 샤치호코는 현재 멤버가 5명이나 본래 6인조로 활동했던 걸그룹입니다. 6명은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2012년 4월 7일 나고야성 니시노 마루 광장에서 노상 라이브를 펼치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습니다. 주로 나고야에서 활동했던 지역 아이돌로서 자신들의 인지도를 키우더니 그 해 10월 31일 'ザ・スターダストボウリング(더 스타더스트 볼링)'이라는 3rd 싱글을 발매하며 나고야 메이저에 데뷔했습니다. 그 앨범이 오리콘 차트 최고 순위가 17위에 도달하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떨칠 명분을 마련했더니 2013년 4th 싱글 '首都移転計画(수도이전계획)'을 통해 메이저 데뷔했습니다.


나고야 출신의 팀 샤치호코는 5th 싱글 '愛の地球祭(사랑의 지구제, 2013년 10월 30일 발매)'부터 8th 싱글 '天才バカボン(천재 바카본, 2015년 5월 13일 발매)에 이르기까지 4장의 싱글 앨범을 오리콘 차트 최고 순위 5위권 이내에 안착시켰습니다. 초창기에는 지역 아이돌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일본 전역에서 많은 인기를 얻는 아이돌로 발돋움했습니다. 비록 지난 2월에는 안도 유즈가 건강 악화로 무기한 활동 휴식을 취하면서 멤버가 5명으로 줄었으나 9th 싱글 'Cherie!'를 4월 7일에 발매하면서 일본 정상급 아이돌로 발돋움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 : 팀 샤치호코, 사진 출처 : 팀 샤치호코 블로그 메인(ameblo.jp/team-syachihoko)]


(동영상)


[동영상 : 팀 샤치호코 J.A.N.A.I.C.A. 뮤직비디오, 동영상 출처 : 팀 샤치호코 공식 유튜브]


팀 샤치호코의 인기 요인은 자신들만의 발랄한 개성이 돋보입니다. 근래 선보였던 노래들이 밝은 것과 더불어 멜로디까지 중독성이 강해졌습니다. 특히 2015년 10월 28일 발매했던 미니앨범 수록곡 'J.A.N.A.I.C.A.'라는 노래는 JPOP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즐겨들기 좋은 멜로디가 인상 깊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밝으면서 유쾌한 기분을 자아낼 만한 노래들을 선보이며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팀 샤치호코는 밝고 화려한 의상을 즐겨 입는 편입니다. 자신들의 밝은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연출합니다. 이렇게 확고한 콘셉트를 보여주면서 각자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팀 샤치호코의 이미지는 모모이로 클로버 Z, 시리쓰에비스추가쿠와 뚜렷하게 다릅니다. 모모이로 클로버 Z가 엽기적인 콘셉트를 선보이면서 자신들만의 특이한 안무를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점이 부각되었다면 시리쓰에비스추가쿠는 영원한 중학생 콘셉트를 추구하는 특이한 매력이 있습니다. 팀 샤치호코는 이들에 비해 밝은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개성이 넘쳐납니다. 스타더스트 프로모션에서 활동 중인 걸그룹들의 성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팀 샤치호코의 향후 과제는 자신들의 인기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선배 그룹인 모모이로 클로버 Z처럼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지금의 밝은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실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증명할 무언가의 히든카드가 필요한 것이 분명합니다. 지역 아이돌 데뷔 이후 끊임없는 오름세를 질주했던 팀 샤치호코의 성장이 앞으로 계속될지 주목됩니다.

마노 에리나, 소녀 비주얼 돋보였던 일본 아이돌

<마노 에리나, 소녀 비주얼 돋보였던 일본 아이돌>


하로! 프로젝트(Hello! Project, ハロー!プロジェクト)는 일본 최정상급 프로듀서 층쿠(つんく♂)가 키우는 여성 아이돌 팀들을 일컫는 이름입니다. 모닝구무스메(현 모닝구무스메'16), ℃-ute, 베리즈코보 같은 일본의 인기 걸그룹 음악 작업을 담당했던 프로듀서가 바로 층쿠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로! 프로젝트의 모든 노래가 층쿠 작곡에 의해서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배우로 활동 중인 마노 에리나(真野恵里菜)가 하로!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시절을 돌아보면 층쿠 작곡한 노래가 적은 편입니다. 층쿠 특유의 음악적 특색과는 다른 느낌이 드는 여성 아이돌 가수였습니다.





[사진 : 마노 에리나, 사진 출처 : 마노 에리나 공식 홈페이지 메인 (http://www.just-pro.jp/talent/actor-talent-model/mano_erina/)


흔히 하로! 프로젝트에서 활동했던 1인 여성 아이돌로서 마츠우라 아야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마츠우라 아야만 혼자 활동했던 것은 아닙니다. 마츠우라 아야가 2000년대 초반과 중반에 많은 인기를 얻었다면 그녀의 인기가 저무는 시점이었던 2008년에는 마노 에리나가 자신의 인디즈 싱글을 발매하면서 가수 및 배우 활동을 함께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하로! 프로젝트 풋살 팀 온가쿠 갓타스(音楽ガッタス)라는 유닛의 멤버로 소속되었으나 가수로서의 정식적인 데뷔는 솔로 활동을 통해 성사됐습니다. 2008년 인디즈 싱글 3장 발매한 뒤 2009년 3월 18일 메이저 싱글 1st '乙女の祈り(소녀의 기도)'를 통해서 데뷔했습니다.


마노 에리나가 가수 활동했던 초기를 되돌아보면 전형적인 소녀 이미지가 잘 드러났습니다. 메이저 싱글 데뷔곡이었던 乙女の祈り에서는 조용한 발라드를 부르며 소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차분하게 표현했습니다. 싱글 2nd 'はじめての経験(첫 경험)'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경쾌해진 노래의 흐름에 맞춰 가볍게 춤을 췄습니다. 다른 여성 아이돌에 비해 춤의 난이도가 쉬운 것을 보면 그녀가 음악적인 재능보다는 소녀로서의 친근한 인상을 심어주는 비주얼 요소가 뚜렷한 가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싱글 3th '世界は サマー・パーティ(세계의 서머 파티)'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노래가 가볍게 느껴지면서 그녀의 앳된 외모가 강조됐습니다.


그 이후에 발표했던 노래들도 비슷한 콘셉트를 유지했습니다. 층쿠가 작곡했던 싱글 6th '春の嵐(봄의 태풍)'이라는 노래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마노 에리나가 소녀의 순정을 나타내는 이미지에 최적화된 가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그녀가 아이돌 가수로 활동했던 타이밍이 하필이면 하로! 프로젝트가 침체기에 빠졌던 때였습니다. 하로! 프로젝트의 솔로 가수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임팩트가 약했습니다.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렸음에도 마츠우라 아야 만큼의 영향력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뚜렷한 외모와 소녀 느낌이 물씬 나는 비주얼을 과시하며 일본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그 특징이 가수보다는 배우로서의 경쟁력이 더 강했던 요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진 : 2013년 일본 TV도쿄 드라마 <모두! 초능력자야!(みんな! エスパーだよ!)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던 마노 에리나, 사진 출처 : 모두! 초능력자야!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 (tv-tokyo.co.jp/esper)]


마노 에리나는 현재 일본 드라마 및 영화에 활발히 출연 중입니다. 2014년 이후에는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다작을 하면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넓히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녀가 배우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2013년 하로! 프로젝트 졸업 때문입니다. 그동안 가수와 배우 활동을 병행했더니 하로! 프로젝트를 떠나면서 연기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아이돌에서 배우로 거듭난 그녀의 행보가 거침없습니다. 이제는 그녀의 아이돌 시절이 완전한 과거의 추억으로 회자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노 에리나가 2016년 1월 자신의 콘서트 투어에서 공연한 것을 보면 가수로서의 복귀 가능성이 결코 없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배우 활동에 주력 중이나 한때는 가수로서 크게 성공하고 싶어 했던 꿈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아직 가수 활동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을 수도 있어요. 향후 그녀의 행보가 어떨지 알 수 없으나 일본 연예계에서 부지런히 활동 중인 그녀의 노력이 과연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지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ZONE, 추억의 JPOP 여성 아이돌 밴드

<ZONE, 추억의 JPOP 여성 아이돌 밴드>


사람들에게 아이돌 이미지는 아마도 댄스 그룹으로 비치기 쉬울 겁니다.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이 많죠. 하지만 아티스트 영역이 뚜렷한 락 장르에서도 아이돌 그룹이 활동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가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으며 걸그룹 원더걸스는 2015년 가요계에 컴백하면서 밴드로 변신했습니다. 락 장르가 강세인 일본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ZONE이라는 4인조 여성 아이돌 밴드가 일본 대중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시절 한국에서도 ZONE 노래를 즐겨들었던 JPOP 마니아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회자됩니다.





[사진 : ZONE이 2012년 6월 6일 마지막 싱글(16th)을 발매했을 당시에는 멤버가 2명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 ZONE 스페셜 웹사이트 'believe in ZONE'(sonymusic.co.jp/Music/Info/ZONE)]


ZONE은 1997년 12월 결성, 1999년 12월 인디 데뷔, 2001년 2월 메이저 데뷔의 과정을 거쳤던 4인조 밴드입니다. TAKAYO, MIYU(이상 보컬, 기타) MAIKO(보컬, 베이스) MIZUHO(보컬, 드럼, 키보드)가 2003년까지 함께 활동했던 때가 ZONE 전성기였습니다. 그녀들의 주요 히트곡이 그 시기에 여럿 있었으며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 연속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했습니다. 2004년에는 TAKAYO를 대신하여 TOMOKA(보컬, 기타, 키보드)가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으나 어떤 관점에서는 ZONE에 복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ZONE의 인디 시절에 활동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ZONE이 처음 결성되었을 때의 멤버 수는 8명이며 TOMOKA도 당시 멤버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ZONE은 태생적으로 락 그룹이 아닌 댄스 그룹이었습니다. 메이저 데뷔 싱글 1st 'GOOD DAYS', 2nd '大爆発 NO.1(대폭발 NO.1)' 공연을 할 때 율동과 점프, 악기 연주를 동시에 병행했던 이유가 이 같은 배경 때문이었을 겁니다. 다른 락 밴드와 달리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느낌이 짙었습니다. 심지어 싱글 4th '世界のほんの片隅から(세계의 그저 한쪽 구석으로부터)'에서는 락이 아닌 댄스를 선보이면서 다른 걸그룹처럼 노래와 춤을 추었습니다. 마치 4인조 걸그룹 SPEED처럼 말입니다. 이때까지의 ZONE은 락과 댄스를 병행하는 4인조 아이돌 그룹이었습니다.


ZONE이 밴드로 회자되는 이유는 싱글 3rd 'secret base ~君がくれたもの~(secret base ~그대가 주었던 것~)'이라는 노래의 영향이 큽니다. 이 노래는 ZONE을 유명 스타로 발돋움시켰던 대표적인 히트곡입니다. 오리콘 차트 첫 상위권 진입(주간 2위) 및 NHK 홍백가합전 첫 출장의 영광을 누린 것은 물론 당시 한국의 JPOP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노래였습니다. 지금도 ZONE 음악을 즐겨듣는 사람에게는 이 노래가 쉽게 잊히지 않을 겁니다. 중독적인 멜로디의 도입부가 노래를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더니 감미롭고 차분한 락 발라드를 연주 및 합창하는 멤버 4명의 모습을 보며 가사에서 전해지는 메시지에 감명을 느끼게 됩니다. 슬프면서 감동을 느끼게 되는 묘한 매력의 락 발라드입니다.





[사진 : ZONE 마지막 멤버 MAIKO는 2013년 4월 7일 트위터를 통해 오랫동안 ZONE을 응원해서 감사했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이 때를 이후로 ZONE은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출처 : twitter.com/ZONE_10years]


ZONE은 싱글 4th에서 댄스를 선보인 이후 5th '夢ノカケラ∙∙∙(꿈의 조각)', 6th '一雫(한 방울)'이라는 락 발라드곡을 발표하며 본래의 밴드 콘셉트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춤과 공연을 병행하는 퍼포먼스가 아닌 더욱 진중한 모습으로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밴드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히트곡을 남기며 2000년대 초반 일본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이돌 밴드로 거듭났습니다. 만약 이들이 끊임없이 댄스를 추구했다면 지금 시점에서 여성 아이돌 밴드로 회자되지 않았을 겁니다. ZONE이 댄스 장르의 걸그룹이었다면 어떤 행보를 나타냈을지 알 수 없으나 JPOP 마니아들이 기억하는 ZONE의 특색을 느끼기 어려웠을지 모를 일입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ZONE의 롱런이 순탄치 못했습니다. 두 번의 멤버 탈퇴 및 2005년 해체, 2011년 3인조 재결성 이후 또다시 두 번의 멤버 탈퇴를 겪으며 2013년 활동을 접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추억의 JPOP 여성 아이돌 밴드로 기억에 남게 되었죠. 비록 그녀들이 악기로 함께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으나 secret base ~君がくれたもの~ 같은 명곡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남겼던 활약상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시노하라 료코, 파견의 품격 주인공은 전직 아이돌

<시노하라 료코, 파견의 품격 주인공은 전직 아이돌>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일본 드라마 중에서 2007년 일본 NTV에서 방영된 <파견의 품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의 SBS 드라마 플러스에서는 <만능사원 오오마에>라는 이름으로 방영됐습니다. 주인공 시노하라 료코(篠原涼子)는 오오마에 하루코라는 슈퍼 파견 사원으로 출연하면서 다방면에 걸쳐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파견직 여직원의 모습을 흥미롭게 연기했습니다. 이 대목을 보면 2013년 KBS2 인기 드라마 <직장의 신> 주인공 김혜수가 떠오릅니다. 직장의 신 원작이 바로 파견의 품격이었으니까요. 김혜수는 시노하라 료코처럼 슈퍼 계약직 사원을 잘 연기하며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사진 :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 인물 관계도, 사진 출처 : 파견의 품격 공식 홈페이지(ntv.co.jp/haken)]




[사진 : 파견의 품격에서 오오마에 하루코 역으로 출연했던 시노하라 료코, 사진 출처 : 파견의 품격 공식 홈페이지(ntv.co.jp/haken)]


2013년 직장의 신이 국내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었을 때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 바로 파견의 품격입니다. 그 원작을 통해 시노하라 료코라는 이름이 여론에서 회자가 됐습니다. 시노하라 료코는 그 이전부터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1989년 드라마 데뷔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본 드라마 및 영화에 출연했던 인기 여배우이자 CF에 활발히 출연했습니다.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몇 차례 달성할 정도로 빼어난 연기력을 과시합니다.


이러한 시노하라 료코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아이돌 가수라는 의외의 경력이 눈에 띕니다. 그것도 TK패밀리(또는 국내에서 TK사단으로 일컬어지는)의 일원이었습니다. TK는 일본의 전설적 프로듀서 고무로 데츠야(Komuro Tetsuya, 小室哲哉) 영어 이니셜입니다. 그가 90년대 전성기를 보냈던 이유는 자신이 프로듀스를 했던 가수들이 여럿 성공했습니다. 자신의 소속 그룹인 Globe를 비롯하여 아무로 나미에, TRF, Hitomi, 스즈키 아미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수들의 히트곡을 '양산'했습니다. TK패밀리에 속했던 또 다른 가수가 바로 시노하라 료코입니다.


시노하라 료코는 1990년 도쿄 퍼포먼스 돌(東京パフォーマンスドール)이라는 7인조 걸그룹 멤버로 가수 데뷔했습니다. 도쿄 퍼포먼스 돌은 1기 시절만을 놓고 보면 엄청난 앨범 판매량을 나타냈던 아이돌은 아니었으나 지속적인 음반 발매 및 공연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무로 데츠야에게 곡을 받기도 했었죠. 이 때문인지 시노하라 료코가 고무로 데츠야와 함께 음악적인 인연을 맺었습니다. (도쿄 퍼포먼스 돌 멤버 중에 눈에 띄는 인물이 영화 <고쿠센> 여자 주인공으로 유명한 나카마 유키에입니다. 연수생이었다가 도쿄 퍼포먼스 돌 1기가 끝날 무렵에서야 임시로 가수 활동했습니다. 그때는 시노하라 료코가 팀을 떠났던 이후였습니다.)



[사진 : 시노하라 료코, 사진 출처 : 재팬 뮤직 엔터테인먼트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japanmusic.jp)]


시노하라 료코 아이돌 가수 활동의 정점은 1994년이었습니다. 자신의 싱글 4집 앨범에서 고무로 데츠야 작사 및 작곡의 '恋しさと せつなさと 心強さと(그리움과 안타까움과 든든함과)'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일본 여자 솔로 가수 최초로 싱글 앨범 판매량 200만 장을 돌파했습니다. 이 노래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아이돌 솔로 가수로서 부진을 거듭했으나 고무로 데츠야의 프로듀스를 받더니 싱글 앨범 200만 장 가수로 역전했습니다. 이 노래를 들어보면 고무로 데츠야 특유의 중독적이면서 신나는 멜로디가 매력적입니다. 시노하라 료코의 시원스러운 보컬과 궁합이 잘 맞았죠.(TK패밀리 여자 가수들의 전반적인 특징이 이렇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고 시노하라 료코는 1994년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하는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오름세가 있으면 내림세도 있는 법입니다. 시노하라 료코는 고무로 데츠야와 싱글 6집까지 함께했으나 그 이후 TK패밀리와의 인연이 끝났습니다. 그러면서 가수 활동이 다시 정체에 빠진 끝에 2003년 싱글 16집을 끝으로 앨범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배우로서 승승장구하며 일본 정상급 여배우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비록 아이돌 가수로서의 활약은 꾸준하지 못했으나 1994년 恋しさと せつなさと 心強さと이라는 명곡을 남기면서 자신이 과거에 가수였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회자시킬 명분을 안겨줬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반전 과거입니다.